• 월간 KIMA

    일본 스가 정권의 평가와 한일관계 전망
    저 자 진창수
    출 처 32호
    발행 년도 2020년 10월
    주제 키워드 스가 정권한일관계포스트 아베한중일 정상회담일본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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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베 장기집권의 그림자

     

    지난 9월 14일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스가 전 관방장관이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 총재로 당선된 후, 16일 중참 양원 본회의에서 제99대 스가 총리가 탄생하였다. 스가 내각은 아베 전 총리의 갑작스런 사임 표명 이후 내년 9월까지 아베의 잔임 임기를 한다는 점에서 과도내각 또는 잠정내각의 성격이 강하다. 스가 총리는 첫 각의에서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생활을 하루 빨리 회복하기 위해 아베 정권의 대응을 계승하겠다”라는 담화를 채택하면서 새로운 정책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따라서 스가 총리가 선거 후 안정정권이 되지 않고는 아베 정책 유산을 당분간 벗어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자민당 내에서는 아베가 병으로 사임을 했다는 동정론과 함께 내년 도쿄 올림픽개최가 최우선 과제가 되고 있어 지금 당장은 아베를 비판하면서 새로운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는 분위기이다. 지금 아베와 대립각을 세워 다른 정책을 수립하는 것은 코로나의 대응에도 도움이 안 된다는 인식이다.

        

    아베 총리의 최대 업적은 총리가 1년마다 교체되는 혼미한 정국에 종지부를 찍고 일본 정치의 안정을 가져온 것을 들 수 있다. 아베 총리가 장기집권을 한 배경에는 ‘관저 주도’와 ‘아베 1강’을 꼽을 수 있다. ‘관저 주도’는 주요 정책결정 과정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총리 관저에 권력이 집중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각 인사국을 중심으로 인사를 장악함으로써 아베 총리를 둘러싼 ‘관저 관료’로 불리는 측근 그룹이 정책을 기획 입안하고 이를 관계 성(省)에 지시하는 ‘톱다운((top down)’ 정책결정방식을 취했다. 또한 선거의 연승에 의한 ‘아베 1강’ 체제이다. 아베 총리는 무당파층을 잡으려던 기존의 수상과는 달리 자민당의 고정표를 다지면서 국정선거에서 승리를 거듭함으로써 자민당을 확고히 장악할 수 있었다.1) ‘아베 1강’ 확립에는 자민당 내 파벌의 약화도 한몫을 하였다. 아베 정권시기에는 아베 총리가 정부와 당내 인사권을 장악함으로써 파벌의 힘이 약화되어 아베 총리에 도전하기가 힘들어졌다.2)

        

    아베 장기집권의 그림자는 스가 정권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베 장기집권의 부정적인 유산에 대한 극복이 스가 정권의 안정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베 정권하에 관저주도의 톱다운 방식에 따른 강권적인 수법은 관료기구의 정책검증능력을 약화되었고 관료가 출세를 위해 관저의 눈치만 살피는 ‘손타쿠(忖度: 미루어 헤아림)’의 폐해마저 나타났다.3) 게다가 자민당의 정책 유연성을 사라지고 야당이 축소되면서 정국의 활력 또한 잃어버리게 되었다. 아베 장기집권의 폐해는 결국 정책에서도 활력을 찾기 힘들게 만들었다. 우선 아베노믹스가 한계에 다다르면서 일본 경제는 저출산 고령화, 중앙과 지방,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 확대, 국내 총생산(GDP)의 2배 이상의 공공부채(재정 건전성 악화) 등의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스가 총리는 생산성 향상과 규제 철폐와 같은 구조개혁을 통해 지속가능한 경제성장과 사회보장제도를 실현하는 중·장기 과제를 안게 되었다. 또한 스가 내각 시기에는 아베 내각 시기의 스캔들과 관련된 공문서 조작, 권력의 사유화, 정치자금 문제 등 폭발성이 있는 사안들의 정치쟁점화에 대해서도 과제로 남아 있다.

        

        

    스가 총리 정책의 방향

        

    스가 총리의 인사를 보면 ‘아베 개조 내각’으로 불릴 수 있을 정도로 아베 내각의 주요 인사가 유임되었다. 이는 5개의 파벌의 지지로 당 총재에 선출된 스가가 정권 운영의 안정성을 중시한 결과라고 할수 있다.4)

        

    과도기적인 스가 정권을 안정화시키기 위해서라도 스가 총리는 코로나의 방역에 성공과 함께 경제를 되살리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즉 ‘아베정치의 계승’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취지이다. 코로나는 최근 감염세가 다소 둔화되고 있지만, 스가 내각은 겨울철을 대비하여 현 방역태세를 유지하고, 내년 상반기 코로나 백신을 확보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리고 경제정책에서는 코로나의 감염 확대에 따른 가계나 기업 경영의 타격을 완화시키기 위한 아베 정책은 계속하겠다고 주장했다. 경기가 한층 침체될 경우에는 추가 재정출동을 검토할 생각이라고 하여 아베 금융완화 정책의 지속성도 강조하였다. 그 예로 스가 총리는 9월 12일 토론회에서 “경제회생 없이는 재정건전화는 없다. 그러나 장래까지 (증세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라고 하면서도 “아베 총리가 10년 인상하지 않겠다고 한다. 나도 똑같은 의견이다”라고 말한 것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아베 총리의 갑작스런 사퇴와 코로나라는 특수한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스가 총리가의 통치 철학이나 국가비전이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총재 선거 과정에서 스가는 “자종(自助), 공조(共助), 공조(公助) 그리고 인연(絆)”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지만, 자신이 그리는 일본 사회의 미래 비전에 대해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하였다.

        

    그렇지만 경제 정책의 중점은 변화하고 있다. 앞으로 스가 총리는 아베정책 유산을 계승하면서도 개혁론자로서의 이미지를 만들고자 노력할 것이다. 시대가 난폭하다고 생각할 정도 행동으로 옮겨 정책의 성과를 내겠다는 스가 총리의 의욕이 이를 대변하고 있다. 코로나 대응에서는 행정의 디지털화를 촉구하면서 디지털청으로 행정을 일원화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스가 총리는 아베노믹스의 3개 화살(금융완화, 재정확대, 성장전략) 중의 성장전략인 규제완화에 중점을 두겠다고 했다. 이처럼 아베 시대와 달리 정책에 대한 방점이 달라졌다. 이번 내각 인사에서는 이를 반응하듯 행정개혁에 적극적인 고노 타로 방위상의 행정개혁장관에 기용하여 정부조직의 ‘간막이(縦割り)’의 타파와 철저한 규제 개혁을 강조하였다. 또한, 스가 총리가 특별한 의욕을 보이는 행정의 디지털화를 주도할 디지털장관을 신설하는 등 일정 정도 스가 내각의 독자성을 강조하였다. 스가는 아베노믹스의 연장선에서 정부조직의 간막이 구도와 선례주의를 배제하여 규제개혁을 추진하겠다고 했지만, 이러한 각론적 수단에 방향성을 제시하는 총론적 개념을 보여주지 못하는 한계는 여전히 있다.

        

    스가 총리는 외교분야에서도 아베 내각의 정책을 전면적으로 계승하겠다는 입장이다. 그의 공약집에는 미일동맹을 기축으로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의 전략적 추진, 중국 등 주변국과의 안정적인 관계의 구축, 북일관계에서 일본인 납치문제의 해결과 헌법개정 추진 등이 담겨 있다. 미일관계에서는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아베-트럼프 관계의 외교적 유산을 계승하면서 미일동맹의 강화, 인도태평양 구상 등을 축으로 부상하는 중국에 대한 공동 대응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중일관계에서 스가 총리는 아베 내각 시기에 추구했던 ‘전략적 호혜 관계의 구축’이라는 목표는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지만 미·중 전략경쟁이 심화되면서 미·중과의 관계 설정이 스가 외교의 최대 과제가 되고 있다. 자민당 내 시진핑 국빈 방문에 대한 비판적 인식에 영향을 받은 탓인지 아베 시대와 다른 뉘앙스를 풍긴 것도 주목해야 한다. 그 예로 스가 총리는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의 국빈으로서의 일본 방문에 관해서 “지금 구체적인 일정 조정을 실시하는 단계는 아니다”라고 말한 것이다.

        

    스가 정권이 미일동맹을 강화하면서도 중국 시진핑과 협력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지가 과제로 남아 있다. 또한 일본인 납치문제의 해결에도 의욕을 보이고 있지만, 그 실현 가능성은 어려워 보인다.

        

        

    한일관계의 영향

        

    일본 정치사에서 보면 스가 총리는 조정형의 리더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소프트한 이미지보다는 강경한 조정형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우파의 신념보다는 냉철한 리얼리스트의 측면이 강하다. 스가 총리의 리더십 특성으로 인해 한일관계 변화의 여지는 있다. 스가 총리는 아베처럼 우파적 신념이 강하지 않기 때문에 한국이 합리적인 제안으로 접근할 경우에는 대화의 공간은 열릴 수 있다. 그렇지만, 스가 총리는 관방장관 시절 안중근 의사, 위안부 합의, 수출규제 관련 강경 발언을 거듭해왔다. 최근에도 한일 과거사 문제는 1965년 청구권 협정으로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되었으며, 2018년 한국 대법원의 징용 배상 판결이 국제법인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위배된다고 발언하여 아베 정권의 논리를 답습하고 있다. 이 점에서 아직 리얼리스트 스가의 모습이 강할지는 알 수가 없다. 스가 총리의 리더십 특성보다는 정치 상황의 변화가 한일관계 개선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높다.

        

    일본의 정국 상황을 보면 내년 9월까지의 잠정 내각 하에서는 한일관계 개선은 쉽지 않아 보인다. 현재 스가 총리는 내년 9월까지 잠정 정권 이후에도 안정적 정권을 만드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스가 정권이 안정화되기 위해서 새 총리 탄생에 따른 지지율 상승을 기반으로 중의원을 해산하고 총선거에 돌입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다. 그렇지만, 스가 총리는 조기 총선보다는 정책의 성과를 바탕으로 선거를 하는 편에 무게를 두고 있다. 코로나 방역에서 성과를 내면서 일본 국민들을 안심시킨다면 스가 정권은 안정화될 수 있다는 정치적 계산이다. 그리고 아베 전 총리가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못했던 성장전략(규제완화) 정책을 통하여 지방으로부터 지지를 확보한다면 선거에서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면 스가 총리의 우선순위는 국내정책에 있다. 즉, 스가 총리의 최우선 과제는 성공적인 코로나 대응을 통해 정치적 지지를 높이는 것이다. 또한, 선거를 통해 정권을 안정화시켜야 한다는 의욕도 강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스가 총리는 국내정책에서는 구체적인 정책 대안을 내세우지만, 외교 분야에서는 구체성이 결여되어 있다. 특히 최초의 총리기자회견에서 한일관계는 아무런 언급조차 하지 않아 정책 우선순위와 관심이 낮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스가 정권의 대일외교는 한국의 대응에 따라 반응하는 ‘수동형 외교’가 되기 쉽다. 또한, 일본 정국의 상황에 따라서는 스가 총리가 국내 보수층의 결집과 정권 기반 강화를 우선해서 강경론을 고집할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당분간 스가 총리가 한일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올 가능성은 매우 적다는 것은 분명하다.

        

    스가 총리의 등장은 한일관계에서 대화의 계기를 마련한 것은 틀림없다. 그렇지만 일본의 변화에만 기대를 걸어서는 한일관계의 개선은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 스가 총리의 리얼리스트 측면을 잘 활용하여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한일관계 개선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우선 한일 정상 간의 허심탄회한 대화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가을에 예정되어 있는 한·중·일 정상회담의 개최를 한일 정상간 대화의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 한일 정상 간의 대화를 개최하기 위해서라도 청와대와 관저의 소통도 적극화되어야 한다. 또한 국회에서도 ‘제2의 문희상’ 안을 제안하여 한일 정부 교섭에 물꼬를 터주어야 한다.

        

     

    ※ 각주

    1) 야당으로 임한 2012년 중의원 총선에서 480석 중 294석으로 대승한 것을 시작으로 국정 선거에서 이례적인 4연승을 이루어내었다. 그 결과 아베는 2015년의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무투표 재선이 가능했다.

        

    2) 아베는 당내 포섭적 인사를 통해 경쟁자를 약화시키는 전략을 취함으로써 아베의 정국 장악력은 더욱 더 확고해졌다. 아베의 포섭적 인사로 가장 명료하게 보이는 것이 간사장 포스트였다. 지방조직에 인기가 있어 아베를 위협할 가능성이 높은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리버럴 색이 강해 이념면에서 어울리지 않는 다니가키 사다카즈(谷垣禎一), 노련한 파벌 정치인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등 아베는 잠재적 경쟁자를 간사장으로 기용하여 ‘아베 1강’ 체제를 굳혔다.

        

    3) 그 대표적 예가 2018년 3월에는 모리토모학원의 국유지 거래에 대해 재무성 관료가 행한 문서 조작 사건이다.

        

    4) 각료 20명 중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장관을 비롯한 8명이 재임되고, 3명의 자리이동과 4명의 재입각하였다. 첫 입각은 5명에 불과하다.

    위원
    진창수
    객원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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