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IMA 정책연구

    북한비핵화는 ‘공개적·한시적 자체 핵무장’이 궁극의 해결책
    저 자 허남성
    출 처 제1호
    발행 년도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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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론

     

    우리는 지금 어떤 의미에서 민족의 운명을 판가름 지을 역사적 기로에 서 있다. 북한 핵 때문이다. 북한이 실질적(de facto) 핵 보유국이 되면서 한반도의 주도권을 쥐고 공산화 통일의 길로 나아가느냐, 아니면 오히려 북한의 붕괴가 앞당겨지고 자유민주화 통일의 길이 열리느냐의 갈림길이 그것이다.

     

    한편, 북한의 핵 문제는 단순히 군사적 문제만도 아니고, 정치·외교적 문제만도 아니며, 혹은 한국만의 문제나 미국만의 문제나 동북아지역만의 문제도 아니다. 그러나 이처럼 북한 핵 문제가 실로 복합적이고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의 이해관계가 얽힌 의제라고는 해도, 가장 절박한 이해 당사자는 한국과 북한이다. 한국과 북한은 1945년 분단 이래 남북에 서로 대립적인 체제와 이념의 성을 쌓고 생사존망의 싸움을 벌여 왔다. 이 싸움에는 어정쩡한 중간 영역의 해결점이란 없고, 결국은 어느 한 쪽이 쓰러져야만 끝나게 되어 있다. 그런데 북한은 지금 ‘핵’이라는 ‘금단의 절대무기’를 손아귀에 쥐게 된 상황에서 지난 수십 년간 열세였고 거의 패배 직전이었던 이 싸움을 일거에 역전시키려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싸움은 단순히 남북 어느 한 쪽만의 승패로 귀결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 한민족이 세계 역사 속에서 웅비하느냐 아니면 나락으로 떨어지느냐를 판가름할 것이다. 지혜를 모으고, 밤을 새워 논의하고 또 논의해도 결코 넘치지 않을 의제가 아닐 수 없다.

     

    이 글은 우선 북한이 핵을 가지려는 동기와 목표를 추정해보고, 완벽한 북한 핵 폐기가 어째서 불가능한지를 분석할 것이다. 그 다음, 핵 협상 과정에서 미·북 간에 모종의 ‘타협’으로 과거 제네바핵합의처럼 북한의 ‘과거 핵’(이번에는 소량의 핵탄두)을 덮고 타결 짓는 ‘불완전 비핵화’의 악몽과 같은 시나리오를 예측해보고, 이 경우 우리의 대안으로서 자체 핵무장 필요성 논리를 펼치고자 한다. 그리고 결론으로서는 몇 가지 전망과 제언을 제시하겠다.

     

     

    2. 북한의 핵 보유 동기와 목표

     

    북한이 그토록 끈질기게 핵무기 보유를 추구해 온 것은 어떤 이유 때문일까? 여기서는 우선 한 국가가 핵무기를 향해 나아가는 일반적 동기에 관해 살펴본 뒤,14) 북한이 핵실험을 통해 대외 및 대내적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석하겠다. 어떤 국가가 핵무기를 보유하려는 정책결정을 내리는 데에는 적어도 다음과 같은 정치적·군사적·경제적 고려와 동기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즉, 전반적인 국제안보 환경의 상태, 지역적 세력균형 관계, 적국으로부터의 위협인식 정도, 그러한 위협에 대하여 자국의 안보를 담보받기 위한 동맹의 신뢰성 및 보장성 여부, 핵무기 보유로 파생되는 권위 및 지위향상에 대한 욕망 정도, 그리고 기타 핵무기의 정치적·군사적·경제적 효용성에 관한 인식 등등이 그것들이다. 일반적으로 핵무기는 국가의 안보를 강화하거나, 국가의 위신을 제고시키거나, 영향력을 증대시키거나, 또는 경제적 여건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편으로 여겨져 왔다.15) 이러한 동기들을 북한의 상황에 대입하여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9가지로 추정할 수 있다.

     

    ① 최후의 수단(last resort) : 정권, 체제, 국가의 존망이 걸린 치명적 위기 시 이를 타개하기 위한 마지막 카드

    ② 대규모 외부공격에 대한 억제수단 : 핵 억제력

    ③ 한국의 재래식 군사력 우세에 대한 비대칭적 상쇄 수단 : 대남 군사우위 확보

    ④ 현상 유지(status quo) 지속 : 현상동결로 붕괴 예방

    ⑤ 분쟁(전쟁) 발생 시 미·일 등의 전장증원 억제 내지 제한

    ⑥ 중국에 대한 의존도 축소 : 의존이 과도할 시 북한이 원치 않는 중국의 압력에 취약해질 우려-전략적 자율성과 행동의 자유 폭 증대 의도

    ⑦ 심각한 위기 국면 시 강대국(러·중, 또는 미·일)의 중재를 유도하기 위한 외교적 지렛대

    ⑧ 경제적 지원·보상을 얻어내기 위한 협상의 카드

    ⑨ 대내통치 상의 효용성

     

    이제 여섯 차례의 핵실험을 통해 실질적인 핵보유국이 된 북한은 미국과의 양자회담을 통해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주요 목표를 추구할 것으로 예측된다. 하나는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미·북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것이다.

     

    우선 첫째로, 북한은 미국을 상대로 핵보유국 인정을 받은 다음 그것을 바탕으로 기존의 핵보유국들과 동등한 지위에서 소위 ‘핵 군축협상’을 벌이겠다는 것이다. 북한은 인도나 파키스탄, 아니면 적어도 이스라엘과 같은 대우를 받는 핵보유국 지위를 공식화하려고 한다. 북한은 일찍이 2005년 2월 10일 핵보유를 공식 선언한 데 뒤이어, 3월 31일자로 외무성 대변인이 발표한 “조선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담화”에서 이미 핵보유국 지위 요구와 군축회담 개최를 주장한 바 있다.

     

    물론 미국이 이를 쉽사리 들어줄 가능성은 없다. 한국과 일본의 반발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이미 가진 핵무기를 호락호락 포기하지 않으면서 버티다보면 결국 미국도 어쩔 수 없이 타협해오리라는 계산을 할 것이다. 만일 핵보유국 지위가 인정된다면, 북한은 이제 외부로부터의 위협에서 자유로워지는 가운데 내부 통치체계를 공고히 하는 한편, 한국을 ‘핵 인질’로 잡아 위협과 회유를 적절히 구사하면서 각종의 경제적 이득을 짜내고, 남남갈등을 조장하는 등 압도적인 대남 전략적 우위를 마음껏 향유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주도하는 자유민주적·평화적 통일의 길은 멀어지고, 한반도뿐만 아니라 동북아 지역의 안보구도 역시 불안정의 늪에 빠지고 말 것이다.

     

    둘째, 북한은 미국으로부터 확실한 체제보장을 받고, 나아가 북한이 주도하는 한반도 적화통일의 길을 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미·북 평화협정 체결을 요구하고 있다. 미·북 평화협정이라는 용어는 해묵은 것으로서 이미 오래 전부터 북한이 핵문제와 별도로 제기해 오던 것이다. 그 명분은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6·25전쟁의 ‘정전협정’을 종식시키고 새로이 ‘평화협정’을 맺자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숨겨진 함정이 있다. 우선 북한은 정전협정의 주체가 북한과 미국이니까,16) 이를 대체하는 평화협정도 미·북 간에 맺어야 한다는 주장인데, 그 이면에는 한국을 배제하고 한반도에서의 민족적 정통성과 대표성을 북한에 귀속되도록 만들려는 음모가 담겨 있다. 또한 북한은 평화협정의 전제로서 미·북 간 적대관계의 해소, 즉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을 폐기하라는 전제를 달고 있다. 여기에도 함정이 있다. 대북 적대시 정책의 폐기는 논리적으로 그에 연이어 주한미군 철수, 한·미 연합사 및 연합방위체제 해체, 한·미 방위동맹 폐기, 그리고 나아가서 유엔사 해체로까지 이어진다. 말하자면 한국 방위체계의 와해이고 적화통일의 길이 열리는 것, 즉 북한이 일컫는 ‘강성대국 완성’의 조건이 무르익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핵무기를 가진 북한이 미국에 대해서, 비핵화를 원하거든 적대시 정책을 버리라고 요구하고 있다.

     

     

    3. 완벽한 북한 핵 폐기가 불가능한 이유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가능성이 있는가에 대한 답은 그리 간단하지는 않다. 그러나 현실주의적 입장에서 북핵문제를 관찰해보자면 낙관주의보다 비관주의가 더 타당성이 있다고 판단된다.

     

    이미 앞에서 북한의 핵 보유 동기에 관한 분석을 하였거니와, 북한이 궁극적으로 체제생존의 담보수단(last resort)으로서 핵무기 보유를 결정했다고 볼 때, 핵 포기를 이끌어내기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경험적으로도 이스라엘이나 파키스탄처럼 생존적 동기 때문에 핵무장에 나선 경우 결코 핵을 포기하지 않았다. 인도가 핵실험에 성공하자 파키스탄은 “온 국민이 풀뿌리를 캐먹는 한이 있더라도 결코 핵을 포기할 수 없다”고 선언하면서 미국과 국제사회의 온갖 제재와 회유를 무릅쓰고 핵무장을 성공시켰다. 북한의 정서도 파키스탄과 흡사할 것이다.

    논리적으로도 어느 한 쪽이 생존을 건 가치(value)를 어떤 행위(곧, 정책)에 걸고 나섰다면, 이를 저지하는 쪽에서도 그만한 가치를 걸 각오가 없이는 결코 해결할 수가 없다. 그 가치를 건 행위(즉, 핵 보유)를 용인하거나, 그 가치에 버금가는 교환가치를 주고 그 행위를 포기하게 만들거나,17) 아니면 그 가치에 대응할 만한 확실한 대응수단과 각오를 가지고 맞서서 그 행위를 분쇄하는 길이 있을 뿐이다.18)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 동원할 수 있는 카드를 열거해 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은 6가지가 있을 수 있다.

     

    ① 핵 보유를 허용 한다 : 단 유출(수평적 확산)은 엄격히 차단

    ② 대화와 협상으로 푼다 : 엄청난 보상이 필요

    ③ 외교적 압박

    ④ 경제 제재

    ⑤ 봉쇄 및 강압(coercion)

    ⑥ 군사적 타격(surgical strike)

     

    북한 비핵화가 이처럼 난제인 까닭은 여러 가지이지만, 몇 가지로 구분하여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타이밍을 이미 놓쳤다. 돌이켜보면 북한 핵을 포기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 한 ‘죽을(붕괴할)’ 수밖에 없다는 절박감, 뒤집어 말하자면 핵을 고집하는 것이 오히려 죽음을 앞당기는 첩경이라는 절박감뿐이었다. 그래서 핵무기를 갖기 전에 한미공조 및 국제공조로 강력하게 압박했어야 했다. 채찍과 당근이란 원래 잘못된 행위에 대해서는 제재를, 바람직한 행위에 대해서는 보상을 주는 것인데, 그 동안 북한에 대한 채찍에는 일사불란함과 단호함이 결여되어 있었고 당근은 행패를 무마하는 방식으로 주어졌다. 더구나 이미 핵무기를 가진 북한에게 “전부 아니면 전무”식의 압박을 가하는 것은 최후의 순간을 자초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쉬운 일이 아니다. 과연 이 시점에서 한·미의 지도자들과 국민들이 북한에 대해 생사를 걸 만큼의 각오와 인내심을 가지고 압박을 가할 수 있겠는가?

     

    둘째, 어떤 ‘당근’도 북한에게 핵 포기의 ‘교환가치’를 발휘할 수 없다. 사실 평화는 때때로 비평화적 수단과 방법을 구사할 각오와 지혜가 없이는 지켜지기 어려운 난국에 빠지곤 한다. 특히 그 평화를 위협하는 상대(적)가 협박을 통해서 실현시키고자 하는 가치를 크게 걸고 있고, 또한 그 적이 오랫동안 협박을 통해서 얻은 수확에 맛 들여져 있을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특히 북한이 핵무기에 ‘목숨담보(last resort)’의 가치를 걸고 있는 한, 그만한 가치는 어떤 당근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 돈을 주거나 영토를 떼어 주어서 포기시킬 수도 없다. 핵무기를 포기하는 순간 김씨 왕조의 붕괴가 시작될 터인데, 그 어떤 당근인들 먹히겠는가?

     

    셋째, 국제제재에는 늘 ‘뒷구멍’이 있어서 결정적 타격을 가하기가 어렵다. 특히 중국은 북한이 속수무책으로 붕괴되기 보다는 핵을 가지는 한이 있더라도 완충지대(buffer zone)로 살아남기를 더 바란다. 그래서 제재의 뒷문을 열고 밀무역 등 온갖 수단을 다하여 북한의 생존을 돕는다. 또한 김정은은 제재망을 흩트리기 위해 러시아로도 눈을 돌렸다. 그는 2019년 3월 19-24일 기간에 의전 집사인 김창선을 러시아에 파견했는데, 이는 마치 냉전시대 중·소 사이에서의 줄타기 외교를 상기시킨다. 북한의 대 러시아 접근이 성과를 거둘 경우 제재망에는 더 큰 구멍이 생길 것이다. 한편, 문재인 행정부는 출범 초부터 남북대화와 경협이 비핵화 달성의 첩경이라는 기조 하에 대북 유화정책을 펼쳐왔는데, 대화로 북한을 협상 테이블에 부른 것까지는 일정 부분 기여했으나, 대북경협 조급증을 적절히 조절하지 않는 한 오히려 제재망 이완에 가담하는 우(愚)를 저질러, 자칫하면 한미공조에 엇박자가 심화될 여지가 없지 않다.

     

    마지막으로, 완벽한 비핵화에는 넘기 어려운 기술적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 ‘완벽한 비핵화’의 상징적 표현이 소위 ‘CVID (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이며, 이 용어가 근래에 ‘FFVD (Final, Fully Verified Denuclearization)’로 바뀌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검증(verification)인데,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100% 완벽한 검증이란 없다”라고 탄식한다. 최근 외신 보도에 의하면 북한에는 적어도 104 군데에 ‘핵 관련시설’들이 있다고 하는데, 이것들을 북한이 완벽하게 신고하고 무제한적으로 검증에 응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더구나 이것들 외에 추가적인 시설들이 없다는 보장도 없다. 또한 북한에는 3천여 명의 핵심적인 핵 기술자들을 포함하여 약 1만 5천여 명의 핵 관련 종사자들이 있는데, 설령 FFVD가 달성되었다 하더라도 이들의 머리 속에 있는 정보들은 언제라도 새로운 핵무기 제조에 동원될 수 있다. 이 때문에 핵탄두, 핵물질, 핵시설 외에도 ‘사람’에 대한 모니터링이 그토록 강조되는 것이다. 여하튼 기술적 차원의 비핵화 달성에는 넘기 힘든 장벽이 있는 셈이다.

     

    얼마 전 미국 언론에는 김정은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서 “핵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 게 부친의 유훈”이라고 했다는 흥미로운 기사가 올랐다.19)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인 제러드 쿠슈너가 미국 작가 더그 위드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북한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보아야 한다.

     

     

    4. 악몽의 시나리오 : 북한의 ‘불완전 비핵화’

     

    필자는 북한이 이제까지 핵탄두와 운반수단 개발에 정권과 체제의 명운을 걸고 매진한 배경에 ‘북한식 MAD’ 달성이라는 국가목표가 있다고 판단한다. 냉전시대에 미국과 소련은 상대방의 기습적인 핵무기 ‘제1가격(first strike)’에 의한 멸망을 방지하기 위하여, 제1가격을 당하더라도 보복공격인 ‘제2가격(second strike)’을 통해 상대방도 멸망시킬 수 있는 방도를 마련했다. 이것이 소위 ‘상호확증파괴(MAD : Mutual Assured Destruction)’ 개념이다. MAD확보를 위해 미·소는 각각 ‘3축의 핵전력(triad : 지상의 ICBM, 바다의 SLBM, 하늘의 전략폭격기)’체제를 갖추었고, 이로써 핵전쟁의 가능성을 봉쇄했다.

     

    미국을 상대로 한 북한의 ‘MAD’는 어떻게 가능할까? 논리는 이러하다. 북한이 미 본토의 어느 한 도시를 히로시마 정도로 파괴할 수 있는 핵탄두와 운반수단(ICBM 또는 SLBM)을 갖춘다면, 미국은 이를 무릅쓰면서까지 북한에 대한 핵위협이나 핵공격을 가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것이 북한식 MAD이다. MAD에 의해 미·북 사이에는 일종의 ‘공포의 균형’이 성립될 것이다. 북한이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또는 뉴욕이나 심지어 워싱턴 D.C. 같은 도시를 핵무기로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면, 미국과 북한 사이에는 과거 냉전시대에 미·소 사이의 ‘MAD’가 성립되는 것이다. 또한 이를 토대로 한국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을 무력화시킴으로써 동맹의 균열(de-coupling)을 도모하여 한국을 북한의 핵 인질로 삼을 수도 있다. 뉴욕이 잿더미가 되는 것을 무릅쓰면서까지 미국이 서울을 지키려 하겠는지 헤아려보면, 북한식 MAD가 왜 ‘게임 체인저’인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북한은 한편으로 핵무기 개발에, 다른 한편으로는 미사일 개발에 매진해왔다. 특히 북한은 제4차 중동전쟁(10월 전쟁, 1973.10.) 당시 이집트에 군사고문단과 조종사들을 파견한 대가로 소련제스커드미사일을 비밀리에 도입하여 역설계공법으로 미사일 제조 기술을 획득한 이후 미사일 분야에서 급속한 발전을 이루었다. 이제는 미국 본토를 가격할 수 있는 ICBM급 화성 14호와 15호 배치를 목전에 두고 있으며, SLBM을 발사할 수 있는 잠수함 건조와 수중 발사 미사일 실험을 지속하고 있다.

     

    MAD 확보라는 전략적 관점에서 볼 때, 북한은 결코 쉽사리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 보라. 북한이 이 난국을 극복하고 남한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남쪽에 용공정부가 들어서고, 이윽고 남북 연방정부가 수립되어 북한이 주도하는 공산화 통일을 이루는 방법뿐이다. 핵무기는 연방정부 수립 때까지 북한이 붕괴되지 않고 버티게 해 줄 수단, 즉 협상테이블에서 시간벌기, 생명연장을 위한 경제지원, 최후의 순간에 목숨담보(last resort)를 이끌어내 줄 도구이다. 북한의 체제를 지탱해주고 나아가서 적화통일의 문을 열어 줄 ‘여의주’ 같은 핵무기를 김정은이 호락호락 포기할 리가 없다. 사실 북한이 남북정상회담이나 미·북 정상회담을 받아들인 유일한 이유는 엄격한 대북 경제제재의 틀에 숨통을 틔우고, 핵무장국가로서의 북한의 지위를 ‘기정사실화(fait accompli)’하기 위한 시간벌기 때문일 것이다.

     

    더구나 현재 북한은 그 어느 때보다도 자신을 둘러 싼 주변 국제정세가 양호하다. 표면상 북한은 유엔 및 국제사회의 경제제재망에 옥죄임을 당하고 있다. 그러나 미·북 간 핵 협상 과정에서 ‘패싱’을 두려워하는 중국·일본·러시아는 끼어 들 기회만 엿보는 형세라서 언제든 북한이 손짓만 하면 얼씨구 하며 북한과의 대화에 문호를 열어 놓고 대기하는 입장이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는 언제라도 대북 경제제재망을 풀어 줄 준비가 되어 있으며, 일본도 납치문제만 해결된다면 대북수교와 막대한 식민통치 배상금을 지불할 태세이다. 언제 북한이 이처럼 양호한 주변국 정세를 누려본 적이 있었던가? 모두가 북한의 핵무장이 가져온 효과가 아닐 수 없다.

    북한이 이처럼 완전한 핵 폐기를 거부하고 완강하게 버틸 경우, 미국에게는 2가지의 옵션이 있을 수 있다. 하나는 북한을 타격하여 굴복시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과거처럼 ‘어떤 수준’에서 타협(compromise)하여 마무리하는 것이다. 타격에는 군사적 수단으로 북한의 핵무기, 핵물질, 핵시설 등을 불능화 내지 확보하는 방안과, 군사적·비군사적 방법으로 북한 정권을 붕괴·교체시키는 방안이 있다. 문제는 미·북이 한 발짝씩 물러나 타협으로 마무리하는 것으로서, 이는 한국에게는 악몽의 시나리오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이처럼 미·북 간 협상이 타협으로 마무리 될 가능성을 예견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지난 시절 북한과의 핵 협상 과정에서 드러난 일관된 관행 때문이다. 북한은 미국에 대해서 집요하게 자신의 요구사항을 제시하는 한편, 미국의 요구사항은 끈질기게 회피하며 버티기를 한다. 그러면 결국 미국은 북한에 대해 상당 부분 양보를 해서 협상을 타결 짓고는 해왔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실제로 미국 일각에서는 북한이 이미 핵 국가이므로 이를 인정하고 새로운 관계 설정에 나서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예를 들어, 미국기업연구소(AEI) 연구위원인 마이클 오슬린(Michael Auslin)은 이미 2013년 2월 7일 월스트리트 저널(The Wall Street Journal)에 기고한 그의 칼럼 “Pyong yang’s Reality Check”에서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고 새로운 미·북 관계를 선언하라”고 주문한 바 있다.20)

     

    미국 대통령과 국민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9·11 테러처럼 미국 영토가 피격되어 재산과 인명이 대규모로 손실을 입는 사태이다. 북한의 핵탄두가 ICBM에 장착되어 날아온다든가, 또는 북한의 핵무기가 제3의 테러집단에게 입수되어 그것이 미 본토를 타격하는 상황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만일 북한이 CVID 가운데 어느 한 분야만이라도 끝내 지키려하고,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한국정부가 대북지원을 서둘러서 대북 제재망을 흩트려 놓는다면, 미국은 한·중·러가 극력 반대하는 대북 타격 대신 ‘타협’의 길을 선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타협’의 과정과 내용은 다음과 같이 전개될 것이다. 북한은 비핵화 단계를 밟겠다고 약속하고 모든 ‘현재 및 미래의 핵’에 대한 폐기에 나설 테지만, 일정 부분의 ‘과거 핵’은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숨기고 사찰을 회피할 것이다. 이미 풍계리 핵실험장의 ‘파괴 쇼’를 통해서 상당 부분의 과거 핵 활동이 사찰이나 검증 없이 땅속에 묻혀버렸다.

     

    특히, 북한은 미국이 극도로 민감한 관심을 보이는 미 본토와 영토의 안보에 대해서는 매우 흔쾌한 태도로 “수정처럼 투명한 CVID급 폐기”에 임할 것이다. 즉, 미국 본토와 괌 등의 해외 영토를 타격할 수 있는 화성-14/15 등 ICBM과 무수단 등 중거리 미사일, 그리고 SLBM 등은 완전 폐기하고, 현존하는 모든 핵 물질과 생산시설을 폐기하며, 50기 내외의 핵탄두를 자진 신고하고, 제3세력에 대한 어떠한 핵탄두/핵물질/핵설비/핵기술 등의 이전 금지를 절대 서약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자진 신고한 핵탄두 이외에 감추어 둔 소량의 핵탄두(즉, 과거 핵)에 대한 완전하고도 무제한적인 사찰이나 검증은 교묘히 회피하고 거부할 것이다.

     

    북한의 버티기로 협상이 깨질 정도가 되면, 미국은 결국 교착상태를 타개하고 미 본토의 안보만이라도 건지기 위하여 북한과 ‘타협’에 나설 것이다. 그것은 바로 북한의 ‘과거 핵’에 대한 ‘가혹한 검증’의 고삐를 약간 늦춰주는 것이다. 이윽고,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국민들에게 자신이 북한 핵으로부터 “100% 안전한 미국”을 지켜냈으므로 우리가 이겼다는 선언을 자랑스럽게 선포할 것이다. 그리고 미국 국민들 대다수는 이러한 결과에 만족할 것이다. 훗날 이러한 북한의 ‘불완전 비핵화’ 밀약이 드러나더라도 그래 보았자 미 본토의 안보는 담보되었으니, 미국은 핵우산 강화나 핵 공유 등 다른 방법으로 한·일 등 동맹국들의 안보불안감을 해소시키려 들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북한의 ‘과거 핵 활동’을 눈감아주고 타결했던 1994년 제네바 핵합의의 ‘타협’ 방식이다. 제네바 당시와 유사한 방식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에 대해서 이렇게 선언할 것이다. “오케이, 우리가 이겼소. 돈은 당신이 내시오.” 그러나 북한 핵 문제가 이렇게 타결된다면, 북한의 ‘숨겨진 몇 개의 핵탄두’는 그들이 보유한 스커드 및 노동미사일과 결합하여 한국 국민들에게는 ‘악몽’이 아닐 수 없다. 이경우 한국은 북한 핵을 머리에 이고 살면서, 북한의 ‘핵 인질’이 되어 과거 경수로 지원 때처럼 대북 경제보상의 부담을 대부분 짊어지게 될 것이다.

     

     

    5. 우리의 대안 : ‘공개적·한시적 자체 핵무장’

     

    이처럼 절박한 국가안보 위기에 직면하게 되면 한국은 이제 최후의 대응책을 마련해야만 한다. 이러한 최종적 대안을 통칭 ‘플랜 B’라고 부른다. 플랜 B에 해당하는 대안으로는 대체로 ① 미국 전술핵의 한국 재배치,21) ② 나토 식의 한·미 핵 공유, ③ 한국의 자체 핵무장 등을 고려할 수 있다.

     

    최근 미국언론을 통해서도 흥미로운 사실들이 전해지고 있다. 북한이 끝내 비핵화를 거부하고 버티기로 일관할 경우, 그 대안에 관한 내용이다. 전문가 일부에서는 미국 전술핵의 한국 재배치를 거론하였고, 미 국방대학교의 한 교수는 이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한·미가 나토 식 핵 공유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당수의 한국 전문가들도 만약의 경우를 고려한 최후의 선택으로 전술핵 재배치나 핵 공유를 제안한다. 그러나 전술핵 재배치나 핵 공유를 위해서는 새로운 저장시설을 지어야 하는 데, 사드를 도입해 놓고도 아직껏 제대로 설치조차 하지 못한 정황을 감안한다면 전술핵의 한국 재배치나 핵 공유는 쉽지 않은 과제이다. 뿐만 아니라, 재배치 대안은 핵우산 강화 내지 확장억제 수준의 대책일 뿐 ‘우리 핵’이 아니기 때문에 북한 핵에 대한 우리의 궁극적 대책이 될 수는 없다. 나토식 핵 공유 또한 현실적으로 적용하기가 여의치 않고, 핵 사용 권한이 궁극적으로 미국 대통령에게 귀속되어 있어서 ‘우리 핵’이 아니기는 마찬가지이다.22) 따라서 필자는 우리의 플랜 B는 ‘자체 핵무장’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진즉부터 주장해왔다.23)

     

    “핵에는 핵으로만 대응할 수 있다”는 명제처럼, 북한 핵에 대응하는 조치로서 우리는 자체 핵무장을 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북한의 핵 위협을 억제하고 대응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도 ‘우리 핵’이고, 북한 비핵화를 위한 담판의 유일한 카드도 결국은 ‘우리 핵’이다. 북한 비핵화를 돈으로 살 수 있겠는가, 영토로 맞바꿀 수 있겠는가? 핵을 가진 북한과 대등한 협상을 하기 위해서라도 ‘우리 핵’은 필수이다.

     

    어떤 사람들은 무역으로 먹고 사는 한국이 미국과 국제사회의 경제제재를 견뎌낼 수가 없으므로 자체 핵무장이 불가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필자는 그들에게 이렇게 답변하고자 한다. 과거 1966년 당시, 파키스탄의 부토(Zulfikar Ali Buhtto) 수상은 “인도가 핵폭탄을 만든다면, 파키스탄도 만들 것이다. 온 국민이 풀뿌리를 캐먹는 한이 있더라도 그리할 수밖에 없다.”라고 선언한 바 있다. 북한 핵에 의한 ‘핵 노예’가 되는 악몽의 시나리오가 도래한 마당에 한국이라고 파키스탄과 다른 경우이겠는가? 나라의 존망이 걸렸는데 제재가 대수인가?

     

    한국이 핵무장으로 갈 경우, 그래도 우리는 미국과 국제사회의 우려를 덜어줄 수 있는 방안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그것을 ‘공개적·한시적 핵무장(open-door & temporary nuclear armament)’이라고 명명해보았다. 이 계획에 의하면, 한국은 50개24)의 히로시마 급 핵탄두를 국제기구의 엄격한 감시 하에 만든다. 그리고 이 핵탄두들은 북한의 핵탄두들과 1:1 방식으로 폐기하되, IAEA의 통제 하에 CVID를 철저하게 따를 것이다. 국제기구 감시 하에 만든다는 점에서 ‘공개적’이고, 북한 핵 폐기에 상응하여 폐기한다는 점에서 ‘한시적’이다. 이렇게 한다는 데도 미국과 국제사회가 제재를 가하겠다면, 한국 국민인들 풀뿌리를 마다하겠는가?

     

    이 시점에서 우리는 ‘벼랑 끝 핵전략’을 구사할 각오를 해야 할 것이며, 따라서 미국에 대해 다음과 같은 2단계의 ‘비밀담판’을 벌여야 한다.

     

    첫째, 미국으로 하여금 다음과 같은 담판을 중국과 벌이도록 종용한다. “북한 비핵화를 이끌어 낼 확실한 카드는 중국이 가지고 있다. 원유공급 차단과 무역봉쇄의 완전한 시행을 북한은 1년도 못 견딜 것이다. 중국이 이런 조치로 북한 비핵화를 이끌어 내지 않는 한, 우리(미국)도 더 이상 한국의 ‘자체 핵무장’을 저지시킬 수 없다. 한국 핵무장은 결국 일본 및 대만 핵무장으로 이어질 것이다. 과연 귀국(중국)은 이러한 핵확산을 감내하고 방관하려는가?”

     

    둘째, 만일 중국이 이러한 미국의 최후통첩 식 담판을 거부한다면, 한국은 다음과 같은 조치에 돌입한다. 한국 대통령은 국내·외 기자단을 초치하고, ‘한국의 공개적 · 한시적 핵무장’을 선언한다. 그 요지는 다음과 같다.

     

    “대한민국은 북한의 비핵화를 달성하기 위한 미·중 간의 최후 담판이 결렬됨에 따라, 이제 국가존망의 갈림길에 처해졌다. 과거 파키스탄은 ‘온 국민이 풀뿌리를 캐먹는 한이 있더라도 핵무장을 포기하지 않겠다’라는 선언으로 인도의 핵무장에 대응했으며, 현재 한국도 그러한 지경에 이르렀다. 북한의 핵무장으로 이미 ‘한반도 비핵화 선언’은 무효화되었으며, NPT도 제10조 1항에 의하여 대한민국의 탈퇴를 가능하게 해준다. 이에 우리는 다음과 같이 국제사회에 호소한다. 이 시간부터 대한민국은 50개의 히로시마 급 핵탄두를 공개적으로 제조하겠으며, 미·중을 포함한 별도의 ‘국제기구의 무제한 참관’ 하에 투명하게 시행하겠다. 단, 제조된 핵탄두는 ‘보안목적’ 상 ‘미국과의 공동관리’ 하에, 우리 자체의 다양한 운반수단과 결합하여 여러 방법으로 비축한다. 이 핵탄두들은 ‘북한의 완전하고도 투명한 불가역적 비핵화’가 달성될 때 상기의 ‘국제기구’에 반납하여 폐기하는, ‘상응하는 비핵화’를 시행하겠다. 우리는 이 핵탄두들을 보유하는 동안 북한 이외에 그 어느 국가도 겨누지 않을 것이고, 절대 선제적으로 사용하지도 않을 것이며, 또한 한반도 밖으로 반출하지 않을 것임을 전 세계에 엄숙히 약속한다. 이것은 대한민국이 ‘공개적·한시적 핵무장’을 할 수밖에 없는 절체절명의 국가안보 위기상황을 국제사회에 호소하는 선언이며, 이처럼 국가적 생존과 평화를 갈망하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간절한 충정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국제적 제재가 가해진다면, 우리는 그것을 기꺼이 감수할 수밖에 없다.”

     

    이상이 필자가 주장하는 ‘플랜 B’의 내용이다. 그리고 이 계획은 희망컨대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핵 악몽’을 종결시킬 수 있는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의 ‘공개적·한시적 핵무장’아이디어는 그 자체가 중국에 대한 미국의 결정적 협상카드(wild card)가 될 수 있다. 중국은 당연히 한국 핵무장이 일본과 대만으로의 연쇄적 핵 확산으로 번질 것을 우려할 것이고, 이에 따라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최대한의 압박을 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 한, 미국은 한국의 자체 핵무장을 더 이상 막을 수 없다”라는 귀띔만으로도 당장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희망을 가져보자.

     

    그러나, 필자의 마지막 근심은 바로 이것이다. “과연 한국 국민들이 늦지 않은 시점에, 그처럼 결단력 있는 정부를 가질 수는 있을까?” 이것이 필자의 진짜 걱정이다.

     

     

    6. 결론

     

    앞으로의 전망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사안으로는 ‘시간이 누구 편’인가 하는 점이다. 중·단기적으로는 북한이 불리하다. 북한은 GDP성장률이 2017년에 마이너스3.5%였고 2018년에 마이너스5% 등 경제가 뒷걸음질 쳤으며, 2018년 대중국 수출은 전년 대비 87%, 수입은 33% 감소하는 등 통계수치만 보아도 경제난이 심각하다. 경제난은 주로 그 동안의 대북 유엔제재, 특히 2016-2017년 부과된 2270, 2321, 2371, 2375, 2397호 등에 의한 것인데, 북한의 외화 주 수입원인 석탄 및 철광, 수산물, 섬유제품, 노동자 송출 등이 제재망에 묶여 외화 부족현상이 심각하다. 식량난 또한 심각하여 2019년 5월 유엔의 세계식량계획(WFP)에 의하면, 약 40%의 북한주민들이 식량부족으로 시달리고 있다.25) 따라서 북한이 버틸 수 있는 한계는 급속도로 고갈될 것이다.

     

    반면에 미국은 장기적 관점에서 유리하지 않다. 북한이 중·단기에 겪게 될 경제난을 특유의 내구력으로 버텨낼 경우, 시간이 흐를수록 ‘북한 핵의 기정사실화’가 굳어지기 때문에 미국이 오히려 초조해질 것이다.

     

    이러한 경제적 난국과 시간적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적어도 2020년 말까지는 전형적인 버티기와 허세부리기를 고집할 것이다. 왜냐하면, 금년 4월의 한국 총선이 자기들에게 유리한 결과로 귀결되었고, 11월의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협상의 주도권을 틀어쥐게 될 가능성을 엿보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북한은 비록 핵무기를 가진다 할지라도 궁극적인 체제 안보를 담보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한 체제의 붕괴 여부는 외부적 위협이 아니라 내부적 시스템의 효율성에 더 깊숙이 연관되어 있다. 어떤 체제나 국가도 자체적 국가시스템의 모순으로부터 야기되는 붕괴를 회피할 수는 없다. 북한 지도부는 더 이상 버티지 말고 핵 협상에 진솔한 태도로 임하여 핵을 포기하고, 그 대가로 외부의 지원을 받아 개혁개방의 길로 나서야 한다. 그것만이 살 길이다. 그러지 않으면 내부적 붕괴(implosion)를 피할 수도 없고, 행여 내폭을 피한다 해도 결국은 ‘삭아서(erosion)’ 무너질 것이다.

     

    앞으로 전개될 수 있는 남북 및 미·북 정상회담들이나, 또는 복원될 수도 있는 6자회담은 남북관계 뿐만 아니라 지역적 및 세계적 차원에서 국제질서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만일 북한 비핵화를 위한 이 협상들이 실패하게 된다면, 한반도와 동북아지역에서는 긴장과 불안정 국면이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될 것이다. 심지어 지역적 핵 군비경쟁 상황까지도 배제할 수 없다. 반면에 협상이 성공한다면, 한반도와 그 주변지역에서는 평화와 안정을 향한 탄탄대로가 열릴 것이다. 따라서 정상회담들이나 6자회담들은 북한의 완벽한 핵 폐기와 동시에, 북한을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편입시킬 수 있는 개방적이고도 관용적인 조치들을 아울러 이끌어내야 한다.

     

    그렇지만 그러한 시기가 도래할 때까지, 대한민국은 한미동맹과 같은 전통적인 연합방위 및 억제체제 유지에 더욱 정진해야만 한다. 현실주의자의 관점에서 볼 때, 전대미문의 이 불확실한 안보정세 속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한미동맹 관계에 밀착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안보 방책은 단연코 없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이 안보적 차원에서 우려스러운 행보를 드러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는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표방하여 책임 있는 패권국이라면 마땅히 기피해야 할 회귀적이고 소아적(小兒的)인 ‘국가 이기주의(national egoism)’로 돌아 섰으며, 아울러 동맹의 가치를 경시하여 동맹을 단순히 ‘거래적 계약’으로 여기는 우(愚)를 범하고 있다. 시리아에서의 일방적 철군이나, 방위분담금 협상으로 한국, 일본, 나토의 동맹국들을 윽박지르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은 미국이 등을 돌릴 빌미를 주어서는 안 된다. 미국이 등을 돌리는 순간, 한국은 이내 중·일 사이에서 안보적 ‘미아(迷兒)’가 될는지도 모르며, 경제적으로도 파탄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이것이 대한민국이 처해 있는 불변의 지정학적 상황이다.

     

    로마가 패권국이었던 시대 이래, 패권 권역 안의 나라들이 안보를 담보 받는 길은 그 패권의 틀(Pax)에 적응하는 것이다. 좋든 싫든 그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마키아벨리는 “스스로 지키려 하지 않는 자, 그 누가 지켜주려 하겠는가?”라는 의미심장한 명언을 남겼다. 깊이 새겨 볼 충언이다.

     

     

    ※ 각주

     

    13) 이 글은 필자가 1993년 이래 발표한 논문, 보고서, 평론 등의 논의들을 종합한 것이다. 특히 “North Korea and Regional Security: Multilateral and Comprehensive Approach for North Korean Denuclearization”(2019)과 “북한 핵 문제 어떻게 풀어야 하나? : 플랜 B를 중심으로”(2019)를 중점적으로 참고하였다.

     

    14) 이와 관련된 논의는 필자의 논문 “핵확산의 동기론적 배경 연구”에서 분석한 이스라엘의 사례에 비추어 정리한 내용임.

     

    15) William Epstein, “Why States Go-And Don’t Go-Nuclear,”The Annals of the Academy of Political and Social Science, Vol. 430(March, 1977), p. 17.

     

    16) 이 주장은 맞지 않다. 정전협정 체결 시 클라크 대장은 미국의 대표로서가 아니라 한국과 참전 16개국을 포함하는 유엔군의 대표로서 서명한 것이었다. 따라서 한국과 참전 16개국은 협정문에 개별 서명 여부와 상관없이 정전협정의 당사자이다. 정전협정 주체와 관련된 논의는 필자의 평론 “왜곡과 진실: 대한민국은 정전협정의 당사자인가, 아닌가?”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월간 KIMA」(2019. 2월호) 참조.

     

    17) 이 경우 도발행위자는 자기의 위협이 통했다는 성취감과 자만심으로 새로운 위협을 창출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것이 위협의 속성이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하는 우리의 전래동화 「햇님 달님 이야기」의 전개과정과 종말이 주는 시사점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

     

    18) 이 경우 채찍의 크기와 각오의 정도에 따라서 보상으로 제공할 교환가치의 크기는 반비례적으로 작아질 수도 있다.

     

    19) http://www.donga.com/news/View?gid=98042355&date=20191024

     

    20) The Wall Street Journal. 2013. 2. 7. “Pyongyang’s Reality Check.”

     

    21) 미국정부 차원에서는 전술핵 재배치에 부정적이다. 「중앙 선데이」 제549호(2017.9.17.), p.5 참조.

     

    22) 필자의 평론 “NATO식 핵 공유는 현실성이 없다.” 「월간 KIMA」(2020.1월호) 참조.

     

    23) 북한의 5차 핵실험 직후 기고한 필자의 칼럼, 「문화일보」, “공개적·한시적 핵무장 각오할 때다”(2016.9.23.).

     

    24) 이 숫자는 북한 핵탄두 숫자에 연동하여 증감될 수 있다.

     

    25) https//www.nytimes.com/2019/05/03/world/asia/north-korea-food.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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