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IMA 정책연구

    북한 비핵화: 가능성과 한계, 그리고 대안
    저 자 김열수
    출 처 제1호
    발행 년도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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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제제기

     

    제1차 북핵 위기가 발생한 지 30년이 다 되어간다. 그동안 북한 비핵화를 위해 양자, 4자, 6자 회담 등이 개최되었지만 결과적으로 모두 실패했다. 그러는 사 이 북한의 핵무기는 오히려 양적으로 증가했고 질적으로 고도화되었다. 더군다나 2019년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교착상태에 빠져있는 북미 핵회담이 언제 재개될지도 알 수 없다. COVID-19 사태, 미국의 대통령 선거, 미중간의 신 냉전, 그리고 북한의 ‘정면 돌파’가 상호 중층적으로 작용하면서 북한의 비핵 화 문제는 더욱더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김정은은 2019년 연말 개최된 제7기 제5차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통해 “세상은 멀지 않아 조선인민민주주의 공화국이 보유하게 될 새로운 전략무기를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하면서 “충격적인 실제행동”에 나서겠다고 했다. 또한 김정은은 2020년 5월 23일 개최된 제7기 제4차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를 통해 ‘핵전쟁 억제력’을 한층 더 강화하고 “전략무력을 고도의 격동상태에서 운영하기 위한 새로운 방침들”을 제시했다. 비록 북한이 아직 새로운 전략무기를 선보이지 않았고 또 충격적인 실제행동에도 나서지 않았지만 핵무력을 강화하 고 또 즉각 이를 사용할 수 있는 상태로 유지하기 위한 ‘조용한 준비’에 박차를 가하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정말 비핵화를 할까? 본고에서는 북한 비핵화에 대한 가능성과 한계를 분석해 보고 북한 비핵 화 문제와 관련된 대안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2.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이유

     

    북한 핵미사일 개발 이유를 몇 가지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1) 가장 큰 이유는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면 혹시 있을지도 모를 미국의 대북 침략을 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이라크와 리비아가 핵무기를 가지지 못했거나 핵무기 프로그램을 포기했기 때문에 침략을 당했다고 생각한다. 만일 이라크의 후세인(Saddam Hussein) 대통령이 유엔 사찰을 허용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핵무기를 개발했다면 미국의 침략을 억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리비아도 마찬가지이다. 리비아의 카다피(Muammar Gaddafi) 대통령이 미국과의 외교관계 정상화와 핵무기 프로그램을 맞바꾸지 않았더라면 NATO의 공습을 피할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그의 생각도 같은 연장선상에 있다. 구소련의 해체로 한때 세계 3위의 핵무기 보유국이었던 우크라이나가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았더라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강탈하는 일은 없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우크라이나가 비핵화되는 과정에서 미국으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고 또 미국·영국·러시아·우크라이나가 우크라이나의 안전을 보장하는 문서에 공동으로 서명했지만, 이것이 러시아의 강탈을 막을 수 있는 수단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김정은은 이라크, 리비아, 우크라이나의 비극적인 결말을 보면서 억제력을 확보하기 위해 핵무기 개발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둘째, 부수적인 이유이긴 하지만 북한이 핵보유국이 되면 북한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질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 국가의 국제적 위상은 국토의 크기나 경제적 규모 등에 의해 정해지기도 하지만, 한 국가의 군사력, 그중에서도 전략무기의 보유 여부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 인도나 파키스탄은 비확산조약(NPT) 체제 밖에서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고 있다. 북한도 이들 국가처럼 핵국가 반열에 오름으로써 국제적 위상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셋째, 북한 내부의 이유 때문이다. 김정은은 북한이 사실상의 핵보유국이 되면 주민들로부터 자신에 대한 절대 충성을 유도하고 유일지배체제를 강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주민들에게 핵보유국이라는 자부심을 고취함으로써 주민들의 경제적 불만을 어느 정도 해소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연유로 북한은 2012년 4월, 개정된 헌법을 통해 북한을 세계적인 군사 강국이자 핵보유국으로 적시하였다. 또한, 2013년 3월 31일에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개최해 ‘경제건설과 핵무력 건설을 병진시켜 사회주의 강성국가 건설 위업의 최후승리를 앞당겨 나갈 데 대하여’를 명시함으로써 핵.경제 병진 정책을 채택했다. 2013년 4월에는 최고인민회의 제12기 7차 회의에서 “자위적 핵보유국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할데 대하여”라는 법령을 채택했다. 북한은 2017년 한 해 동안 화성12형, 화성 14형, 화성 15형 등 중장거리 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 그리고 그해 12월에 개최된 제8차 군수공업대 회에서 김정은은 ‘핵 무력완성’을 선언하였다. 김정은은 2018년 신년사를 통해 “지난해 국가 핵무력 완성으로 공화국은 되돌릴 수 없는 전쟁 억제력을 보유하게 됐다”고 하면서 “위력과 신뢰성이 담보된 핵탄두들과 탄도로켓을 대량생산하고 실전배치에 박차를 가해 핵전쟁에 대한 책동·반격 태세를 유지”할 것이라고 했다. 적어도 북한 스스로는 ‘핵무력을 완성’함으로써 “미국이 모험적인 불장난을 할 수 없게 제압하는 강력한 억제력”을 확보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렇다면 북한은 어느 정도의 핵미사일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일까?

     

     

    3.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북한은 2006년부터 11년 동안 6차례에 걸쳐 핵실험을 했다. 이로써 북한은 플루토늄탄, 우라늄탄, 증폭 핵분열탄, 수소탄 등 핵무기의 다종화에 성공했고 소형화 및 경량화에도 성공한 것으로 추정된다.2) 또한, 전략 탄도로켓들에 장착할 수 있는 핵탄두를 표준화·규격화함으로써 대량생산도 가능해졌다. 특히,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용 수소탄을 실험하여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위력도 임의로 조정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20년 현재 북한은 최소 30개에서 최대 100개의 핵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3)

     

    핵무기의 양적 증가와 함께 질적 증가, 즉 핵무기의 소형화도 중요하다. 핵탄두의 소형화가 이루어져야 탄도미사일에 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핵탄두의 소형화란 탄두의 지름이 지름 90cm 이하, 무게 1t 미만을 의미한다. 북한은 2017년 9월 3일 제6차 핵실험을 하기 직전 장구모형, 또는 땅콩 껍질 모형의 수소탄 모형을 공개했다. 장구형 핵폭발장치는 1m 크기였고 전선으로 연결된 기폭장치는 둥근 이중 냄비형이었다. 전문가들은 이 정도면 핵탄두 500㎏ 정도를 실을 수 있다고 했다.

     

    강대국이 개발한 소형화된 핵탄두 재원을 보면 미국 110㎏(위력 150kt), 러시아 255㎏(200kt), 중국 600㎏(200∼500kt), 인도 500㎏(12kt) 등이다.4) 기존 핵개발국의 소형화 달성 기간이 2∼7년이기 때문에 북한의 핵실험이 2006년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소형화 능력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을 것으로 평가된다.5) 미국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 미국 국방정보국(DIA), 스캐퍼로티(Curtis Scaparrotti) 전 주한미군 사령관도 북한 핵무기 소형화의 성공 가능성을 주장했다.6) 『2014 국방백서』에서도 북한 핵무기 소형화가 상당한 수준에 이른 것으로 평가되었으며7) 북한의 제6차 핵실험 직후 국회 국방위에 출석한 송영무 전 국방부 장관도 “북한이 6차 핵실험을 통해 500㎏ 이하로 소형화·경량화 능력을 갖춘 것으로 추정한다”고 했다. 따라서 북한의 핵무기 소형화는 어느 정도 달성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북한의 핵무기 운반 능력도 획기적으로 향상되었다. 북한은 2017년에 중장거리 미사일인 화성 12, 14, 15형을 집중적으로 시험발사함으로써 그 능력을 보여주었다. 화성 12형은 사거리 5,000㎞, 화성 14형은 8,000~10,000㎞, 그리고 화성 15형은 13,000㎞로 추정된다. 특히, 화성 15형은 미국의 워싱턴과 뉴욕까지 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현재까지 북한의 제2격력(second strike)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인 북극성이 유일하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은 2016년 8월, 신포급 잠수함에서 고체연료를 사용한 북극성 1형을 발사(고도 600㎞, 사거리 500㎞)해서 성공시켰다. 정상적인 각도였다면 사거리는 1,300㎞로 추정된다. 2019년 10월에는 사거리 2,000㎞로 추정되는 북극성 3형을 시험발사(고도 910㎞, 사거리 450㎞)했다. 북한은 또한 2019년 7월, SLBM 3개 이상을 탑재할 수 있는 골프급(3000톤급) 신형 잠수함을 김정은의 현지 방문 형식을 빌려 공개하기도 했다. 북한이 ICBM에 이어 골프급 잠수함에서 발사하는 SLBM까지 성공한다면 북한 은 명실상부한 사실상의 핵보유국이 되는 것이다.

     

     

    4. 북한의 비핵화 회담 참여 이유 및 쟁점

     

    북한이 북미 비핵화 회담에 참여한 이유는 크게 3가지이다. 첫째, 핵무력을 완성했기 때문에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기 위함이다. 북한은 미국이 인도와 파키스탄이 핵실험을 했을 때 이에 대해 강력한 제재를 가했으나 결국, 제재를 해제하고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인정한 사례를 잘 알고 있다. 북한도 미국과 협상이 잘 이루어진다면 이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대북 제재 해제는 회담의 결과에 따라 당연히 뒤따를 것으로 생각했다.

     

    둘째, 노동당 규약에 명시된 조선노동당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당 규약 전문에는 “전 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민주주의 혁명 과업 수행”을 당면목적으로, “온 사회를 김일성-김정일주의화”하는 것을 최종목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한 “남조선에서 미제의 침략 무력을 몰아내”기 위해 투쟁할 것을 제시하고 있다. 노동당의 당면목표(적)를 쉽게 표현하면, 남한 정권은 미국의 괴뢰정권이기 때문에 미군 을 몰아내어 남한을 해방시키고 현재의 ‘괴뢰정권’ 대신 들어설 진정한 ‘인민의 정권’과 손잡고 북한 주도의 통일을 달성함으로써 혁명 과업을 완수하겠다는 것이다. 미군을 철수시키는 한반도 평화협정이 체결된다면 북한은 노동당 규약에 명시되어 있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셋째, ‘북한 비핵화’가 아니라 ‘한반도 비핵화’를 달성하기 위함이다. 북한은 단 한번도 ‘북한 비핵화’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북한이 생각하는 한반도 비핵화는 2016년 7월 북한 정부 대변인 성명에 잘 나타나 있다.8) 북한은 ‘조선반도 비핵화’를 ①남조선에서의 미국 핵무기 공개, ②남조선에서 모든 핵무기와 핵기지 폐쇄 및 검증, ③미국이 조선반도와 주변에 핵 타격수단을 끌어들이지 않겠다는 담보, ④어떤 경우에도 북한에 대한 핵 위협을 하거나 핵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확약, ⑤남조선에서의 미군의 철수 선포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북한은 2018년 12월 20일에도 조선중앙통신의 담화를 통해 “우리의 핵 억제력을 없애기 전에 조선(북)에 대한 미국의 핵 위협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 ‘조선반도 비핵화’라고 했다.

     

    북한이 북미회담에 참여한 이유는 2018년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채택된 6.12 공동성명에 그대로 나타나 있다. 공동성명 제1항은 미국과의 새로운 관계 수립을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북한이 미국과의 수교를 통해 미국으로부터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겠다는 의지가 숨겨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제2항은 한반 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협력하자는 것인데, 북한은 이를 통해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북한 주도의 통일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제3항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노력하자는 것인데 ‘북한 비핵화’가 아니라 북한 정부 대변인 성명에서 발표한 ‘한반도 비핵화’를 고려한 것이다. 북한은 비핵화 문제마저도 공동성명의 세 번째 항으로 밀어내었다.

     

    제1차 회담이 의례적 수준의 회담이라고 한다면 제2차 회담부터는 성과를 내야 한다. 그러나 2019년 2월의 하노이 회담은 결렬되었다. 북한은 선 제재 해제와 해제의 범위에 초점을 맞추었고 미국은 선 비핵화와 비핵화 범위에 초점을 맞추었다. 북한은 미국에게 민생과 관련된 5개의 유엔 대북 제재 결의안 해제를 요구했다. 북한이 2016년에 제4차, 제5차 핵실험과 무수단 및 노동 미사일 시험 발사를 하자 유엔안보리는 결의안 2개(2270호, 2321호)를 통과시켰다. 북한이 2017년에 제6차 핵실험과 화성 12, 14, 14형을 시험 발사했을 때 유엔안보리는 결의안 4개(2356호, 2371호, 2375호, 2397호)를 통과시켰다. 총 6개의 결의안 중에서 제2356호는 인원 및 기관에 대한 제재였고 나머지 5개의 결의안은 북한의 수출입을 제재하는 결의안이었다.9) 따라서 5개의 안보리 결의안이 대북 경제 제재의 핵심인데 북한은 이것을 요구한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이것을 수용해 주면 미국이 사용할 수 있는 다음 카드는 거의 없기에 이를 거부했다.

     

    미국은 이에 대해 북한에 제시한 영변 핵시설 폐기 외에 +α를 요구했다. +α는 영변 이외의 다른 핵 시설일 수도 있지만,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이 밝힌 것처럼 핵목록 신고나 비핵화 로드맵일 수도 있다. 영변 핵시설의 전부 폐기냐 또는 일부 폐기냐의 문제를 두고도 논쟁이 있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영변 핵시설 폐기의 범위가 분명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자 이용호 외무상은 기자회견에서 “영변 핵의 플루토늄과 우라늄을 포함한 모든 핵물질 생산시설을 미국 전문가들의 입회하에 두 나라 기술자들이 공동으로 작업하여 영구적으로 폐기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용호의 발언은 영변에는 핵물질 생산시설뿐만 아니라 연구단지를 포함하여 약 400개 가까운 건물이 있는데 그중에서 핵물질 생산시설만 폐기한다는 뜻이 된다. 따라서 폐기의 범위가 불분명하긴 하다. 최선희 제1부상은 가자들의 질문에 “영변 핵시설 전체를 폐기 대상”으로 제시했다고 답했다. 그러나 미국은 제재 해제의 범위와 비핵화의 범위 사이에 등가성이 없다고 판단하여 회담을 결렬시켰다.

     

     

    5. 북한 비핵화 가능성과 한계

     

    제3차 북미 회담의 가능성 여부는 2019년 가을이 되어서야 겨우 논의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2019년 10월 6일 스톡홀름에서 개최된 북미 실무회담은 곧 실망으로 바뀌었다. 미국의 비건 대표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가지고 회담에 임했다”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김명길 대표가 “미국의 구태의연한 입장과 태도”를 탓하면서 회담을 결렬시켰기 때문이다. 그 이후 2020년 6월까지 8개월이 경과했음에도 불구하고 제3차 북미회담을 위한 어떤 움직임도 관찰되지 않고 있다. 미증유의 코로나 팬더믹 현상이 발생한 가운데 미국이 대선 국면에 들어섰기에 더욱더 그렇다.

     

    북한 비핵화를 위한 미국의 전략 목표는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VD)’이다. 미국은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최대한의 압박과 관여(Maximum Pressure and Engagement) 정책을 통해 북한을 회담장으로 끌어내었다. 그것도 정상회담을 통한 하향식(Top-Down) 방법이었다. 그러나 북미 정상은 비핵화의 방법론을 두고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미국은 북한 비핵화와 이에 대한 반대급부 성격의 보상을 큰 틀에서 교환하는 ‘빅딜’론을 주장했다. 빅딜이란 북한이 모든 핵에 대한 신고·폐기·검증 및 비핵화 로드맵을 제시하면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대북제재 해제, 북미 관계 개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맞교환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포괄적 타결을 먼저 한 연후에 이행은 단계적으로 하자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트럼프 모델’이다.10)

     

    북한의 전략 목표는 미국으로부터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 인도나 파키스탄 모델이다. 차선의 시나리오는 미국과의 핵 군축이다.11) 차선의 시나리오는 미국이 제시하는 보상 범위에 따라 달라지긴 하겠지만 과거 핵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시나리오이다. 이를 위해 북한은 과거 6자회담시 자신이 줄곧 주장한 방법론인 ‘단계적ㆍ동시적 조치’를 주장한다. 단계적 비핵화를 하면서 매 단계 동시 행동을 하자는 것이다. 빅딜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방법론이다.

    미국과 북한은 방법론에 대해 서로서로 불신한다. 미국은 6자회담 시 북한의 주장대로 단계적·동시적 조치를 해 봤지만, 북한의 검증 거부로 북한 비핵화가 무산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따라서 두 번 다시 똑같은 말(horse)을 사지 않겠다고 생각한다. 이에 반해 북한은 미국의 요구대로 핵무기 목록을 제출하면 이를 근거로 미국이 족집게 공격을 할 수도 있고 또 로드맵을 제시하면 행동의 자유가 없다는 점 때문에 미국의 빅딜을 반대한다.

     

    한국도 한국 나름의 북한 비핵화 방법론은 가지고 있었다. 2018년 3월 대북 특별사절단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사절단은 비핵화 3단계 구상을 제안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첫 단계는 핵·미사일 도발을 일시 중단하는 ‘모라토리엄’ 선언, 2단계는 미래핵인 핵개발 시설 폐기, 그리고 3단계는 과거핵인 기존 핵 폐기였다.12) 북한이 대북 특별사절단의 제안을 따랐던 것은 아니지만 북한은 미북회담의 분위기 조성을 위해 제1차 북미정상회담 전에 모라토리움을 선언했고 또 제2차 북미 정상회담시 현재 핵의 일부를 폐기하기 위해 영변 지역을 거론하기도 했다. 그러나 하노이 회담은 결렬되었다.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후에도 한국 정부는 중재적 입장에서 새로운 안, 즉 굿 이너프 딜(good enough deal)이라는 방법론을 제시했다. 북미 간에 포괄적인 비핵화 합의 후 스몰 딜을 통해 조기 수확(early harvest)을 여러 번 하는 방식으로 단계적으로 비핵화를 이행하자는 것이다. 이 방안은 미국이 요구하는 빅딜과 북한이 요구하는 ‘단계적·동시적 조치’의 중간쯤에 해당된다. 그러나 한국의 굿 이너프 딜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미국은 북한이 셈법을 바꾸어 비핵화의 정의와 비핵화의 최종상태(end state)에 합의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로드맵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북한은 단계별 동시 행동을 주장하면서 제해 해제를 통한 생존권과 발전권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이 셈법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북미는 이런 상반된 주장에서 서로 물러서지 않고 있다. 특히, 북한은 자신의 입장 변화가 없을 것임을 ‘정면돌파’ 선언으로 대답하고 있다. 김정은은 작년 연말 노동당 제7기 제5차 전원회의를 통해 “미국의 본심은 대화와 협상의 간판을 걸어놓고 흡진갑진하면서 정치외교적 잇속을 차리는 동시에 제재를 계속 유지하여 우리의 힘을 점차 소모 약화시키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여정도 이에 가세했다. 지난 3월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19 방역 협력 제안 친서에 대해 김여정은 사의를 표하면서도 “공정성과 균형이 보장되지 않고 일방적이며 과욕적 인 생각을 거두지 않는다면 두 나라의 관계는 계속 악화일로로 줄달음칠 것”이라고 했다.

     

     

    6. 북한 비핵화 대안

     

    미국은 대선이 끝날 때까지 북한 핵문제를 상황관리라는 모드로 전환한 것처럼 보인다. 현 시점에서 북한과의 정상회담은 그리 큰 실익이 없는 대신 자칫 잘못하면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에 큰 손실을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북한으로서도 누가 대통령이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정상회담을 통한 비핵화 합의가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오히려 이 기간을 이용하여 세상이 깜짝 놀랄 전략무기를 공개함으로써 핵무력을 강화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노이 회담을 복기해 보면 해결책을 찾을 수도 있다. 양국의 협상 카드가 노출되었기 때문이다. 이용호와 최선희의 발언을 종합해 보면. 미국이 5가지 제재를 해제해 주면 북한은 영변 핵시설 전체를 미국 전문가 입회하에 영구 폐기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와 폼페이오의 발언을 종합해 보면, 북한이 영변 +α에 응한다면 5가지 제재 해제는 가능하다는 것이다. 결국 +α가 관건이다. +α가 영변 이외의 다른 핵시설인지, 핵목록 신고인지, 비핵화 로드맵인지, 그렇지 않으면 둘 또는 셋 모두를 의미하는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α의 범위를 조금 좁히고 제재 해제의 범위를 조금 좁히면 합의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정상회담을 한두 번 더 할 수 있다는 생각만 가진다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사실 합의는 합의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합의한 내용이 핵심이다. 이런 연유로 북미 회담이 지연되고 있긴 하다. 그러나 이 순간에도 북한의 핵무장력은 양적, 질적으로 고도화되고 있는 것 이 현실이다. 현재 핵과 미래 핵이 없어지면 과거 핵도 없앨 수 있지 않을까? 동결이라는 과정을 통해 폐 기라는 목표에 도달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서로 신뢰하지 못하거나 합의한 내용을 어기면 합의 내용을 철회하는 스냅 백(snap back) 조항을 포함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북한의 비핵화 대상인 핵무기, 핵물질, 핵무기 및 핵물질 생산시설, 운반 수단, 그리고 핵 프로그램에 종사하는 전문인력 등 5가지를 모두 폐기하거나 전직시키는 것을 고려한다면 북한 비핵화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영변 핵시설을 포함한 주요 시설의 폐기와 검증 등이 이루어진다면 북한 비핵화는 경로 의존성을 띨 수도 있을 것이다. 한꺼번에 수확이 안 되면 여러 번에 걸쳐 수확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미 국무부 대변인은 2020년 6월 11일, 북미정상회담 2주년을 맞아 미국은 ”북한과 의미있는 협상에 관여하는 데 전념하고 있으며 그러한 제안은 여전히 테이블 위에 있다”고 하면서 “우리는 싱가포르 정상 회담의 모든 약속들에 관련한 균형 잡힌 합의에 도달하기 위해 유연한 접근법을 취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 리선권 외무상은 6월 12일 담화를 통해 미 행정부가 떠드는 “조미 사이 ‘관계 개선’은 제도전복이고 ‘안전담보’는 철저한 핵 선제타격이며 ‘신뢰구축’은 변함없는 대조선 고립압살을 의미한다”고 하면서 “우리 공화국의 변함없는 전략적 목표는 미국의 장기적 군사위협을 관리하기 위한 더욱 확실한 힘을 키우는 것”이라고 했다. 북미간에 주고받는 이런 간접 대화를 본다면 조만간에 북미회담 개최는 쉽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침묵보다는 이런 대화가 오가는 자체가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북미 회담에 대한 희망은 여전히 남아 있다. 따라서 북한의 비핵화 대안이란 단절된 미북 및 남북 정상회담을 재개하여 찾는 것이다.

     

     

    ※ 각주 

    1) 김열수, “눈앞에 닥친 북한 핵.미사일 보유...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자유마당』, Vol.98(2017년 9월), p. 18의 내용을 수정 보완하였음.

    2) 소형화에 대해서는 김열수.김경규, 『한국안보: 위협과 취약성의 딜레마』(파주: 법문사, 2019), pp. 47-52를 참고할 것.

    3) 미국의 랜드연구소는 북한이 현재 15~60개 핵탄두를 보유했으며, 2020년에는 최소 30개에서 최대 100개까지 늘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함지 하, “북한 핵·미사일 보유 현황 주목...핵무기 최소 20개 보유...비밀시설 핵물질 생산,” VOA, 2019.2.28.

    4) 하종훈, “북핵·미사일 고도화 공식 인정... 극대화된 ‘비대칭전력 위협’ 달라진 北 전력 평가,“ 『서울신문』, 2015.1.17.

    5) 김선영, “만km 대포동 2호...핵탄두 탑재 기술만 남았다.” 『세계일보』, 2015.1.7.

    6) ISIS는 3차 핵실험 직후인 2013년 2월 “북한이 핵탄두를 소형화해 노동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고, 2014년 4월 DIA도 “북한이 미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용 핵탄두를 개발했다”는 보고서를 발간한 바 있다. 스캐퍼로티 주한미군 사령관도 2014년 10월 “북한이 핵탄두를 소형화해 미사일에 탑재할 능력을 갖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윤상호.정성택, “北 소형핵 노동미사 일에 탑재땐 ‘한반도 최악 시나리오’,” 『동아일보』, 2015.1.17.을 참조.

    7) 국방부, 『2014 국방백서』, p. 28.

    8) 『조선중앙통신』, 2015.7.6.

    9) 결의안 2270~2371호까지는 북한의 수출품인 석탄, 철, 철광석, 해산물 수출 금지 및 합작사업 금지 등이었다. 2375, 2397호는 의류 수출 금 지, 공해상 환적금지, 유류 및 석유제품 수입 한계 설정, 해외노동자 전면 송환 등이었다.

    10) 민정훈, “트럼프 대통령 하 미국 국내정치 상황과 북핵 해법에의 함의,” 『주요국제문제분석』 2018-27(서울: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2018), p.11.

    11) 북한은 2018년 4월 20일 진행된 조선노동당 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3개의 결정서를 채택했다. 핵.경제 병진노선의 승리 를 선언한 결정서에는, 북한이 “림계전핵시험과 지하핵시험, 핵무기의 소형화·경량화·초대형핵무기와 운반수단개발을 위한 사업을 순차적으 로 진행하여 핵무기 병기화를 믿음직하게 실현하였”기 때문에 2018년 4월 21일부터 “핵시험과 대륙간탄도로케트 시험발사를 중지할 것”이 며, “핵시험 중지를 투명성있게 담보하기 위하여 공화국 북부핵시험장을 폐기할 것”이라고 했다. 또한 “핵시험 중지는 세계적인 핵군축을 위한 중요한 과정이며 우리 공화국은 핵시험의 전면중지를 위한 국제적인 지향과 노력에 합세할 것”이고 “우리 국가에 대한 핵위협이나 핵도발이 없 는 한 핵무기를 절대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그 어떤 경우에도 핵무기와 핵기술을 이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또한 사회주의 경제건설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결정서에는 “당과 국가의 전반사업을 사회주의경제건설에 지향시키고 모든 힘을 총집중할 것”이라고 했다. 이 결정서 들을 해석해 보면, 북한은 핵보유국이 되었기 때문에 앞으로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핵군축 노력, 핵무기 선제 불사용, 핵무기 및 기술 이전 금지 등의 국제 규범을 지켜 나가겠다는 것이다. 또한 핵무력이 완성되었기 때문에 앞으로는 사회주의 경제건설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것이 다. 결정서의 어떤 문구에도 북한 비핵화라는 단어는 단 한마디도 없다. 이승현, “김정은, ‘사회주의 경제건설 총력 집중’ 새 전략노선 천명: 당 제7기 제3차전원회의, ‘경제·핵 병진노선 승리’ 선언 (요지),” 『통일뉴스』, 2018.4.21.

    12) 이민석, “비핵화 문턱 낮춘 3단계는 ‘핵실험 중단→시설 폐기→핵 폐기’,” 『조선일보』, 20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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