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대한민국은 지금 안보적 차원에서 격랑의 한 가운데에 처해 있는 형국이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는 ‘기정사실화’(de facto)의 단계에 접어들었고, 운반수단 역시 중·단거리 미사일은 이미 실전배치 수준이며 장거리 미사일(ICBM) 완성 또한 눈앞에 다가섰다. 한편, 지구촌 차원에서는 미·중 갈등이 점차 본격화되어 경제·기술 차원의 단계를 넘어서서, 이제는 정치·군사적 내지 이념적 차원으로까지 그 불길이 번지지나 않을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더구나 한반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미·일·중·러 등 4국 가운데 미·일의 지도부가 교체되는 정국도 맞이하고 있는 현실이다.

사실 대한민국은 이제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이고, 인구도 5천 3백만 명에 달하는 무시할 수 없는 국가이다. 이 정도의 국력을 갖춘 나라가 유럽의 어느 곳이나 중남미의 어디, 또는 동남아의 어딘가에 위치해있다면 중위권을 넘어 ‘강국’의 지위와 영향력을 발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위치한 한반도는 주변에 세계적 강대국들이 도사리고 있다. 군사력 세계 1~3위(미, 러, 중), 경제력 세계 1~3위(미, 중, 일)의 강대국들이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다. 대륙 쪽의 러시아·중국과 해양 쪽의 미국·일본이 한반도의 38도선 또는 휴전선을 경계로 대치하며 반세기 정도 냉전을 벌여왔으며, 이 구도는 북방3각(러, 중, 북)과 남방3각(미, 일, 한)의 대립구도였다. 20여 년 남짓 탈냉전 상황을 거쳐 이제는 다시 제2차 남·북방 3각 대치구도의 도래를 우려해야 할 지경에 처해 있다. 이러한 상황에 직면하여, 대한민국은 한편

으로는 북한으로부터의 안보위협을 제어 내지 관리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글과도 같은 국제사회에서 생존과 번영을 지속해나가야 할 대전략을 강구해야만 한다. 이 글은 국제문제를 해석하는 틀 가운데 고전적 방법론의 하나이자, 과거는 물론 현재와 미래에도 그 타당성이 유효한 지정학(Geopolitics)에 근거하여 우리의 안보문제를 분석해보고, 그 대안을 제시하려는 시도로 꾸려졌다.

2. 전형적 림랜드(Rimland)인 한반도

지정학의 기본은 지리와 국제정치 사이의 연계성이다. 지리가 국제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 대상으로 한다. 즉, 국제정치의 다양한 행위자들(기본적으로는 국가, 그 외에 국제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단체나 개인도 포함)의 행위(통상 ‘정책’이라는 모습으로 표출됨)가 지리에 의해 어떻게 영향을 받아 작동되는지를 설명하고 예측한다. 여기서 ‘지리’라 함은 한 지역의 위치와 공간, 지형, 기후, 인구, 자원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여기에서 지정학의 여러 이론들을 새삼 설명할 공간은 없으나, 기본적인 언급은 필요하다. 우선, 이 지구는 크게 보아 대륙과 해양으로 갈리며, 그에 따라 국제사회의 질서를 좌지우지해 온 주요국들도 그 근거지를 기반으로 각각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으로 대별된다. 결국 지정학적 차원에서 볼 때, 국제관계의 역사는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사이의 갈등과 투쟁으로 점철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지정학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영국의 맥킨더(Halford J. Mackinder, 1861-1947)는 유라시아대륙이 세계패권의 핵심이라고 보고, 그 중심부를 ‘심장지역(Heartland)’, 심장지역 둘레를 감싸고 있는 지역을 ‘주축지역(Pivot Area)’, 주축지역의 외곽을 ‘내부 및 주변부 초승달 지대(Inner or Marginal Crescent)’로 구분했다. 심장지역과 주축지역을 함께 아우르는 세력이 패권을 쥐게 되고, 주변부를 거쳐 이윽고 해양으로도 진출할 수 있다고 보았다.

한편, 미국의 지정학자인 스파이크맨(Nicholas J. Spykman, 1893-1944)은 맥킨더가 심장지역이나 주축지역보다 소홀히 여겼던 일종의 ‘주변부 초승달지대’를 오히려 주목하여 중요하게 평가했다. 그는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접점이자 경계선지역인 이 ‘가장자리’ 주변부를 ‘림랜드(Rimland)’라고 호칭하며, 림랜드를 통제해야 세계패권을 장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즉, 대륙세력이 해양으로 진출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미국의 패권이 공고히 유지된다고 보았다. 그의 이러한 주장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세계의 패권국으로 떠오르던 미국이 소련에 대한 ‘봉쇄정책(Containment Policy)’을 펼치는 데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

그렇다면 림랜드에 해당되는 지역은 어디일까? 유럽에서는 과거 냉전시대에 동유럽지역이 림랜드였다고 볼 수 있는데, 이 지역이 소련의 위성국화 되어 있었기 때문에 미국은 나토를 구성하여 이곳의 세력균형을 유지하고자 하였다. 소련 붕괴 후 오늘날에는 우크라이나가 림랜드로 떠올랐으며, 크림반도를 포함한 소위 우크라이나 사태는 대륙세력의 대명사인 러시아·중국과 이에 대응하는 미국 및 EU 사이의 갈등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2000년대 초에 미국이 9·11사태를 계기로 아프가니스탄전쟁을 일으켜 파키스탄과 몇몇 중앙아시아 국가들에도 파병하고 군사기지들을 운용했는데, 바로 이 지역들은 러시아는 물론 신흥 대륙세력인 중국을 에워싸며 봉쇄할 수 있는 림랜드이다. 미국은 소련 붕괴 이후 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들에 미군 기지들을 신설하고, 그러한 군사기지망을 아라비아반도 지역과 중앙아시아 지역까지 연결하여 대륙세력 봉쇄선으로 구축했던 것이다.

한편, 동아시아에서는 한반도가 전형적인 림랜드이다. 역사적으로 한반도는 대륙세력이 해양 쪽으로 나아갈 수 있는 출구이자 ‘비수(匕首, dagger)’같은 위치이자, 반대로 해양세력이 대륙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길목이자 침입로였다. 몽골의 일본 침공과 러시아의 부동항구 확보 시도, 일본의 중국 침략 등이 그러한 역사적 사례들이다. 태평양전쟁이 종식되고 일본 식민통치가 막을 내리면서 한반도는 미·소에 의한 분할점령을 맞게 되었는데, 이 또한 한반도를 각각 상대 세력에 대한 ‘완충지대’로 삼고자 했던 지정학적 고려의 소산이었다. 6·25전쟁 초년인 1950년 10월, 중국이 불과 1년 전에 국공내전을 평정한 어수선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중공군 개입을 감행했던 것도 최소한 한반도의 북반부를 완충지대로 확보하려는 의도 때문이었다.104)

현재도 한반도는 해양세력인 미국과 대륙세력인 중국이 지리적으로 맞서 있는 민감한 림랜드이며, 남북한이 각 세력권의 최첨단에서 서로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는 형국이다. 따지고 보면, 중국이 북한 비핵화에 적극적이지 않고 오히려 북한 핵을 용인하고 비호하는 행태를 취하는 것도, 비핵화 과정에서 북한이 자칫 붕괴되기보다는 차라리 핵을 가지는 한이 있더라도 북한이 완충지대로 남아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3. 일대일로전략 대(對) 인도-태평양전략

근래에 벌어지고 있는 미·중 사이의 갈등 역시 지정학적 시각으로 분석이 가능하다. 중국은 덩샤오핑 집권과 더불어 1978년부터 과감한 개혁개방을 추진하여 연평균 10%의 고속성장을 30여 년 지속한 결과, 마침내 2010년부터 GDP 규모에서 일본을 추월하여 세계2위의 경제대국이 되었으며, 2019년에는 GDP 14조 달러를 넘어섰다. 이를 바탕으로 시진핑은 2013년 집권 이후부터 일대일로(一帶一路, One Belt One Road)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는 중국이 종래의 도광양회(韜光養晦)나 화평굴기(和平崛起) 같은 다소 신중하고 자제력이 엿보이던 정책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세계질서 구축의 능동적 주체가 되겠다는 일종의 ‘중국식 세계화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육상 실크로드의 재현인 일대일로 프로젝트는 해상 실크로드로 일컬어지는 진주목걸이(String of Pearls) 프로젝트와 더불어 중국이 유라시아와 서태평양 및 인도양까지 포괄하는 신흥 패권국으로 도약하려는 야심찬 전략이다. 이러한 일대일로 전략은 소위 제1도련선, 제2도련선 등의 내해(內海) 확보 차원에서 남중국해의 인공섬들에 군사기지를 설치하여 미국에 군사적으로도 각을 세우는 차원에 이르렀다. 이윽고 시진핑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소위 ‘중국몽(中國夢)’을 공공연히 내세우게 되었다. 건국 100주년이 되는 2049년까지 중국을 미국과 대등한 패권국가로 이룩하겠다는 꿈을 선언한 셈이다.

한편, 미국은 2017년 12월 18일에 발표한 「국가안보전략서(NSS)」에서 종전에 사용했던 ‘아시아-태평양’ 대신 ‘인도-태평양’이라는 용어를 등장시켰다. 이 용어의 배경이 된 개념은 아베 신조 일본 수상이인도 학자 쿠라나(Gurpreet Khurana)의 주장으로부터 차용하여 트럼프 대통령에게 끈질기게 강조함으로써 관철된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이 개념은 NSS에 공식적인 전략개념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2018년 5월 30일 태평양사령부는 인도-태평양사령부(US Indo-Pacific Command)로 개칭되어 지구 표면의 약 52%를 관장하는 거대 사령부의 문패를 바꿔달았다.

사실 ‘인도-태평양’ 개념은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 중시 정책인 소위 ‘Pivot to Asia’ 또는 ‘Rebalance to Asia’개념과 유사하지만, 인도양을 끼고 있는 인도를 ‘아-태’영역으로 끌어들여 보다 광역화시킨 개념이다. 이로써 미국은 미국-일본-호주-인도를 잇는 그물망을 통해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을 견제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냈다. 이들 4개국 사이의 안보대화를 ‘Quadrilateral Security Dialogue’(QSD 또는 Quad)라고 부른다. 혹자는 이 쿼드를 ‘아시아판 나토’(Asian NATO)의 전주곡이라고 서둘러 평가하기도 한다. 2020년 3월에는 쿼드 4개국 외에 한국·베트남·뉴질랜드 등이 참여한 ‘코로나 19 대응 7개국 차관급 전화회의’도 출범하였다. 이러한 ‘쿼드 플러스’ 조직은 아직은 재난에 대한 공동대응 수준이지만, 과거 쿼드도 쓰나미 구호를 계기로 출범하여 점차 안보대화 수준까지 진척된 사실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미국이 ‘인도-태평양’ 구상을 내놓은 저변에는 중국이 러시아를 대신하는 패권경쟁국 반열에 오르는 것을 쉽사리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즉, 미국이 자체의 힘과 자신을 맹주로 하는 동맹세력들과 더불어 자신의 뜻에 부합하는 세계질서를 구축하고, 이를 통해 지구촌의 평화와 안정을 주도해나가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Pax Romana’나 ‘Pax Britannica’에 견줄 수 있는 ‘Pax Americana’개념이다. 닉슨 행정부가 키신저를 앞세워 중국에 문호를 개방했던 전략의 핵심은 ‘중국을 키워서 러시아(소련)를 견제’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중국의 개혁개방을 지원하여 중국 경제를 향상시키면, 중국도 시장경제의 국제질서에 흡인되어 결국은 민주적 체제로 전환되리라는 기대도 있었다. 그러나 지난 40년의 과정을 뒤돌아보면, 중국은 경제성장을 위해 시장경제의 원리를 도입했음에도 소위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고수하며 근본적인 체제변환은 한사코 외면했다.

그 동안 중국은 통상에서의 우위를 지키기 위해 환율조작, 불공정관세, 부당 금융지원, 노예노동, 덤핑, 기술 해킹, 지적재산권 탈취 등 국제적 시장경제 기준에 어긋나는 온갖 부정행위를 통해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특히 시진핑 집권 이래는 러시아를 대신하는 G-2를 자임하며, 커진 몸집만큼 미국의 패권에 대한 도전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그리하여 미국은 특히 트럼프 행정부 이후 ‘America First’를 내세우며 지난 40년의 대중 포용을 청산하고 견제와 대결 태세를 분명히 하고 있다. 현재 미·중 사이의 갈등은 무역통상 갈등을 넘어 기술패권 갈등, 외교·군사 갈등, 그리고 이데올로기(공산주의 대 자유민주주의) 갈등의 범주까지 번지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미·중 갈등은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다자주의를 선호하는 미국 민주당의 기본정강에 충실해 온 바이든의 성향을 감안했을 때 기후협약이나 몇몇 통상 분야에서의 대중 협력 추구는 가능하겠지만, 기술분야를 포함한 전반적인 무역 갈등이나 외교·군사적 차원 그리고 이념과 체제적 차원의 대결구도에서 그 흐름을 역류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미국 국내여론이 이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4. 중국이 미국의 패권을 넘어서기 어려운 이유105)

일부 평론가들은 미·중을 ‘G-2’라고 호칭하며 중국을 미국에 버금가는 초강대국 대접을 하기도 하고, 2030년을 전후하여 중국의 GDP가 미국을 초월하는 세계 제1의 경제대국이 되리라고 예측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과연 중국은 미국에 필적하거나 혹은 능가하는 세계의 패권국이 될 수 있을까? 필자는 앞으로 30년, 어쩌면 50년 이내에 그런 일이 벌어지기는 어렵다고 전망한다. 그 이유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현재 중국의 경제규모가 미국과의 격차를 빠르게 좁혀가고는 있지만, 그 내실을 관찰하면 여러 문제점들이 눈에 띈다. 중국은 지난 한 세대 동안 고도 압축성장으로 눈부신 성과를 이룬 대신, 이제는 그로 인한 갖가지 난제들에 직면해있다. 빈부격차, 부정부패, 노사문제, 인구노령화 외에도 시급한 산업구조 개편과 같은 근본적 과제가 눈앞에 도사리고 있다. 특히 빈부격차로 인한 양극화 현상은 경제문제를 넘어 심각한 사회정치 문제로 비화될 소지가 다분하다. 중국 내에는 ‘부자 6천만 명과 빈자 10억 명이 공존’하고 있는데, 이 격차를 줄여 나가려면 매년 적어도 6% 이상의 경제성장을 지속해야 된다. 얼마 전 중국정부의 발표를 보면 2018년에 가까스로 6% 성장을 했다고 하지만, 중국 경제 사정에 정통한 미국기업연구소(AEI)의 평가에 의하면 고작 3% 안팎에 불과하며, 이 수준도 향후에는 지속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106) 이와 반면에 미국의 과학기술 수준은 이미 4차 산업혁명 분야에서도 중국을 압도하는 이른바 ‘넘사벽’을 구축하고 멀찌감치 앞서 가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중국이 비록 시장경제체제를 도입하여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하기는 했으나, 국가가 주도하는 근본적 사회주의 체질을 바꾸지 않는 한 자유민주체제의 시장경제를 능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둘째, 미국은 세계의 두뇌를 유인하는 세계 최고수준의 대학 교육제도를 갖고 있다. 첨단 학문과 기술을 배우기 위하여 세계의 인재들이 미국으로 몰려들고, 그 가운데 상당수는 조건이 좋은 미국에 잔류한다. 이 추세는 다소 변동이 있겠지만, 대세가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이 두뇌집단들이 첨단지식과 과학기술을 선순환적으로 선도하는 한 미국의 우위는 지속될 것이다. 이들이 바로 토인비(Arnold J. Toynbee)가 말하는 ‘창조적 소수’이며, 문명의 발전은 창조적 소수가 이끄는 것이다. 과거 로마제국도 특별한 지식과 재능이 있는 이민족들에게 시민권 문호를 관대하게 개방하여 제국의 번영을 도모한 예가 있다.

셋째, 미국은 산업의 필수 원동력인 에너지 분야에서도 중국을 압도한다. 특히 셰일가스 정제기술의 발전으로 향후 200년 이상 원유를 자급자족하고도 남는다. 반면에 중국은 원유와 천연가스를 지나치게 해외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실정으로, 에너지 시장의 파동 또는 기타 정치군사적 요인에 의한 에너지 수급 상의 큰 모험적 변수를 늘 끼고 살아야 한다.

넷째, 미국은 세계의 기축통화인 ‘달러’를 가지고 있다. 이것보다 더 큰 경제적 무기는 없다. 미국이 엄청난 무역역조나 재정적자에도 눈썹 하나 꿈쩍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다. 아닌 말로, 결정적 위기 시에 달러를 마음껏 찍어내서 상황을 타개한 뒤 두고두고 회수하여 정리할 수 있는 힘이 늘 손아귀에 있다. 1973년 닉슨 대통령이 달러의 ‘금 본위제도’를 타파함으로써 미국은 역설적으로 더 큰 금융재정 상의 융통성을 향유하게 되었다. 미국의 국채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중국이 이를 경제전쟁에서 무기로 함부로 쓸 수 없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중국이 미국 국채를 시장에 대량으로 풀어보았자 미국이 달러를 찍어내서 회수에 나설 경우, 이자율이 곤두박질 쳐서 결국 손해는 중국이 보게 되는 것이다.

다섯째, 미국은 세계 제1의 농업 초강대국이다. 축산 및 가금류(닭, 오리, 칠면조 등)까지 포함할 경우 미국이 생산하는 농축산 생산품은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 생산량보다 오히려 더 많다. 미국은 경작 가능 면적의 대략 1/10 정도를 경작할 뿐인데도 그러하다.

여섯째, 미국의 군사적 능력은 중국이 감히 견주어 볼 엄두조차 못 낼 만큼 압도적이다. 중국은 총 병력 숫자에서만 230만 명 대 140만 명으로 우세할 뿐, 핵무기나 재래식 무기 및 장비면에서도 열세이며, 특히 질적인 측면에서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이다. 근래에 중국이 소위 ‘일대일로’ 전략으로 육상 실크로드와 해상 ‘진주 목걸이’ 체인을 통해 해외 기지망을 확장하고 있으나, 약 150개국에 800여 개의 해외주둔지를 운용하고 있는 미국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더구나 미국은 최근 인도-태평양전략을 통하여 미국-일본-호주-인도를 잇는 봉쇄망으로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지리적으로도 중국이 남중국해를 벗어난 해역까지 군사력을 투사하기는 쉽지 않다. 중국은 소위 ‘제1도련선’ 범위 내에서 ‘반 접근/지역거부(A2/AD: Anti-Access/Area Denial)’ 전략을 통해 지역적 차원의 우세 내지 패권을 노리는 것이 고작일 것이다.

한편, 국방비를 비교하자면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 자료에 의한 2018년도 기준으로 미국은 6,490억 달러이고 중국은 2,500억 달러(추정치) 정도이다. 미국은 2020 회계연도에 7,190억 달러의 국방비를 의회에 제출한 바가 있으며, 중국은 아마도 약 3,000억 달러 정도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2020년 9월 1일 미국 국방부가 의회에 제출한 「2020 중국 군사력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향후 10년간 현재 200기 초반 수준인 핵탄두 보유량을 2배 정도 늘릴 것으로 예측되었다. 그러나 미국이 3,800기, 러시아가 4,300기의 핵탄두를 보유한 것에 비하면, 이 또한 대등한 수준에는 훨씬 미치지 못한다.

고대에 로마제국은 패권 유지를 위해 로마를 제외한 전 세계(서방 및 중근동지역) 국방비 총액보다도 더 높은 국방비 수준을 유지했으며, 영국도 패권시대(Pax Britannica: 1814-1914)에 영국을 제외한 전 세계 해군력 총합보다 더 큰 해군력을 유지할 만큼의 국방비를 지출했다. 미국도 과거 소련과의 냉전이 심화되었던 시기에 전 세계 국방비 총액의 50%를 상회하는 국방비를 지출했었다. 오늘날 미국은 전 세계 국방비의 40%를 약간 밑도는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만약 앞으로 중국과의 패권경쟁이 본격화될 경우, 중국 대비 군사력 우위를 견지하기 위한 국방비 투자 측면에서 결코 뒤쳐지지는 않을 것이다. 패권은 힘으로 지켜지는 것이기 때문이다.107)

5. 한미동맹의 선제적 강화를 위한 제언

지정학적으로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경계지역인 림랜드에 위치해 있는 한반도는 역사적으로 “고래 싸움에 새우등이 터지는” 숙명적 위험을 늘 안고 지내왔다. 지금처럼 지역적, 범지구적 차원에서 미·중 갈등이 첨예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의 대응은 과연 어떠해야 하는가?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우선, 바이든 행정부가 취할 외교·안보적 태세를 가늠해보고 우리의 선택을 위한 시뮬레이션이 필요하다. 트럼프는 미국 우선주의라는, 패권국이라면 절대 취해서는 아니 될 소아적(小兒的) 이기주의에 빠져 동맹을 ‘거래적 관계’로만 본 나머지 방위비 분담금 등을 빌미로 글로벌 동맹체계를 흔들어 놓았다. 그러나 바이든은 유세과정에서 ‘동맹복원’을 매우 강조했다. 바이든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한국·일본·호주 등 기존의 동맹국들과 관계복원 및 증진을 도모할 뿐만 아니라, 이들을 한데 엮는 ‘민주국가 연합(democratic coalition)’을 만들어 특히 민주·인권 등 ‘가치문제’를 필두로 대중 패권경쟁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한국은 미·중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처할 것이다. 벌써부터 바이든 측근그룹에서는 “한국에 대해 선택을 강요할 뜻이 없다”라는 언급이 나오고 있지만, 이 말은 역설적으로 “알아서 하라”는 더 강한 압박일 수 있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安美經中)”이라는 안이하고 무책임한 선택을 논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자칫 경계선 위의 ‘미아(迷兒)’가 될 수도 있다. 자칫 ‘Korea Passing’의 재현에 직면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필자는 주저 없이 선제적으로 미국을 선택해야 한다고 본다. 어느 지한파 미국 전문가는 “미국 역사상 최고의 작품은 전등, 자동차, 비행기, 우주선, 반도체, 컴퓨터, 인터넷이 아니라 자유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이다”라고 말했다. 사실 한국이 유사 이래 전례가 없을 만큼 그토록 짧은 기간에 그토록 눈부신 번영과 안보를 누리게 된 것은 자유 민주주의의 본거지인 미국이라는 해양세력의 범주에 편입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를 오늘날 북한의 실태와 비교해보라. 이보다 더 웅변적 증거가 있는가? 안보적·경제적 차원에서 한미동맹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불가결’의 문제이다.

한편, 경제적 차원에서 지나치게 중국 눈치를 의식하는 입장은 오히려 중국에게 주도권을 내주는 우(愚)를 범하는 것이다. 근래에 우리의 통상규모 비중에서 중국이 미국보다 더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무역외수지, 금융, 과학기술, 문화, 교육 등 경제 유관분야들을 총체적으로 고려하거나 EU, 중남미 등 세계시장들과의 연관성까지 감안한다면 중국의 비중이 미국보다 결코 더 크다고 할 수도 없다. 더구나 국내에 대한 외국인 투자 통계를 보면, 미국이 15%인데 비해 중국은 3% 정도에 그친다. 뿐만 아니라 한·중의 산업구조를 보면, 아직은 중국이 한국의 부품 및 소재산업에 의지하는 비율이 높고, 기술 이전단계에서도 한국에 대한 의존성이 유지되고 있다. 따라서 한·중 간 경제 차원에서 상호보완적인 협력관계만 잘 관리한다면 급작스러운 파국이 도래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한미동맹을 더 강화하고 업그레이드하기 위하여는 다음과 같은 이슈들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조처들이 수반되어야 한다. 그것들은 전시작전통제권(이하 전작권), 방위비 분담금, 주한미군과 기지 문제, 지소미아 및 한·미·일 안보협력 등등이다.

첫째, 전작권과 지휘구조 개편 문제는 특정 시한에 너무 집착하기보다 ‘조건’에 더욱 기반해야 한다. 당초 한미 양국이 합의했던 기본운용능력(IOC: Initial Operational Capability), 완전운용능력(FOC:Full Operational Capability), 완전임무수행능력(FMC: Full Mission Capability) 등 검증평가 3단계는 연합훈련 중단 및 축소 그리고 코로나 사태 등으로 2단계부터 불가항력적 차질을 빚고 있다. 더구나 이 3단계 검증평가는 한국군 지휘능력 등 26개 조건들 가운데 한 가지 조건일 뿐, 나머지 25개 조건들의 차질 없는 충족 여부도 여전히 미지수이다. 전작권 이슈는 미군 지휘관이 전작권을 행사한다고 해서 주권이 침해된다는 주장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고, 연합방위능력 제고 여부가 관건일 뿐이다. 무리한 전작권 전환을 서둘렀다가 유사시 한국안보를 훼손시킨다면, 그것이 오히려 주권을 해치는 일이다.

둘째, 바이든 당선인은 유세기간 중,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대해 방위비 분담금을 과도하게 증액하라는 압력을 두고 ‘갈취’라는 표현을 썼다. 실제로 2019년 9월부터 7차례나 열렸던 제11차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 Special Measures Agreement) 협상은 금년 3월 드디어 전년도 분담금 1조 389억 원에서 13% 인상된 1조 1,700억 원으로 타결되는 듯 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이 50% 인상된 13억 달러(약 1조 5,900억 원)를 갑자기 요구하는 바람에 결렬되고 말았다. 한국은 바이든 행정부 첫해에 1조 1,700억 원(10억 달러 약간 상회) 정도로 타결하면서, 이를 매년 물가 상승률에 연동하여 증액하는 조건으로 5년간의 다년 계약을 맺도록 해야 한다.

셋째, 주한미군과 기지 문제는 상호 연동된 이슈이다. 전 세계적으로 800여 개의 기지를 운용하고 있는 미국은 그 기지들에 병력을 영구 내지 반영구 배치, 또는 순환배치 형식으로 운용한다. 어느 지역에서 전쟁이 벌어지면 고정 배치되어 있던 곳에서도 병력을 빼내서 교전지역으로 투입해야 한다. 조지 W. 부시(아들 부시) 대통령 시절, 이라크 전쟁에 대한 미군 투입 원활화를 기하기 위해 소위 ‘해외주둔 미국 재치 계획(GPR: Global Defense Posture Review)’이 활발히 적용된 사례가 있다. 미 국방부는 지금도 주한미군을 여단급 규모로 순환 배치하는데, 그 주기는 9개월 정도이다. 현재 일본과 독일 다음으로 규모가 큰 28,500명의 주한미군은 남중국해 등 중국에 대한 견제 목적 상 그 일부가 동남아 지역으로 ‘유연 배치’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미 의회는 2018년 이후 매년 ‘국방수권법’에 주한미군 감축을 제한하는 규정을 넣어 통과시키고 있는데, 그 만큼 주한미군 감축 가능성 상존을 반영하는 셈이다.

한국이 안보를 위해 적정수준의 주한미군을 확보하려면 논리와 수단이 필요하다. 우선, 논리로는 “한국이 미국의 국가이익을 지키는 싸움에서 최전선에 위치한다”라는 점을 미국 조야에 알려야 한다. 주한미군은 이곳에서 한국안보 수호를 도울 뿐만 아니라, 자유·민주, 번영, 인권 등 건국 이래 미국이 최우선 국익으로 꼽아왔던 ‘가치’를 지키기 위한 미국의 최전선을 지키고 있기도 하다. 더구나 주한미군 규모의 병력을 미 본토에 유지하는 것보다 비용도 훨씬 적게 든다. 최소한 방위비 분담금 정도는 이익을 보는 셈이다.

그 다음, 미국을 설득할 수단은 기지문제이다. 특히 평택기지(Camp Humphreys)는 해외주둔 미군 기지 가운데 최신·최대 규모로서 그 면적이 1,467만 7,000㎡(약 444만여 평, 여의도 5.5배)에 달한다. 약 2.2km 길이의 활주로와 철도망, 그리고 인근에 항만도 구비한 이 기지건설을 위해 한국은 총 비용의 94%에 달하는 약 18조 원을 부담했다. 미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이만한 기지를 쉽사리 포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평택기지의 가치를 미국여론에 적극 홍보해야 한다. 이와 반면에 한국은 경북 성주의 THAAD기지가 하루 빨리 정상 운용될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하며, 아울러 주민 민원을 이유로 폐쇄된 사격훈련장들에 대한 특단의 대책도 시급하다.

한편, 필자는 오래전부터 ‘불침 항공모함’인 제주도에 공군 전투비행단을 배치하는 것이 장차 중국과 일본에 대한 전략적 묘수가 되리라고 주장해왔는데, 이는 제주 군항과 함대에 대한 공중엄호 확보는 물론, 주한 미 공군에게도 활용토록 하여 전략상 유연성과 주둔 명분을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넷째, 한미동맹, 특히 한미연합사에 의한 한미연합방위체제는 한국안보의 ‘보증수표’이자 ‘보험’이다. 그런데 이를 보완해주는 것이 일본과의 안보협력이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래 동북아의 안보구도는 미국이 주도하는 한·미·일 3각 구조가 기본축이었다. 한국은 일본 안보의 ‘방파제’ 역할을, 일본은 한국 안보의 ‘후방기지’ 역할을 해왔다. 그리고 미국은 한국을 동북아 안보의 ‘핵심체(linchpin)’로, 일본은 ‘주춧돌(cornerstone)’로 호칭하며 한·일을 조율해왔다. 그런데 미국은 최근의 한·일 갈등이 기존의 ‘한·미·일 안보적공동운명체’구도를 깨지나 않을지 우려의 눈초리로 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은 일본과의 지소미아(GSOMIA) 파기를 위협하는 ‘안보적 자해행위’를 감행했다. 오판이 아닐 수 없다. 지소미아 없이 미국과의 원활한 정보 교류가 과연 가능하겠는가? 냉정한 판단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일본통 인사를 주일대사에 내정한 일은 고무적이다.

일본에 있는 7개 유엔사 후방기지는 사실상 한반도 유사시에 대비한 병력 및 병참 투입의 징검다리 기능을 가지고 있다. 1973년 제4차 중동전(10월전쟁) 당시 이집트와 이스라엘은 1주일 만에 탄약이 고갈되었다. 소련과 미국은 급히 항공수송으로 각각 이집트와 이스라엘에 탄약을 공급했으나, 결국은 중재로 전쟁을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은 ‘병참소모전’의 성격을 띤 현대전에서 일본의 유엔사 후방기지 지원 없이 어찌 대처할 것인가? 한·일 간에는 비록 직접적인 동맹관계는 없으나 자유민주주의, 자본주의 시장경제, 인권 등 공통의 이념적 공감대가 있는 만큼, 현재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 벌이고자 하는 ‘공산주의 대 자유민주주의 패권투쟁’구도에서 한·미·일 자유·민주 안보전선을 구축하는 데에 동참해야 한다.

6. 맺으며

중·장기적으로 한미동맹은 보다 수평적·포괄적 동맹이 되어야 한다. 새로운 안보환경 평가, 양국 국민의 욕구, 양국의 국가이익, 지역적/세계적 차원의 역할 등 새로운 접점 모색에 따라 동맹의 활력을 재충전해야 한다. 그 핵심은 단순히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의 담보를 넘어서서, 동북아 지역의 평화와 안정 및 경제적 공동번영을 뒷받침하는 동맹, 세계적 차원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장경제 원칙을 공유하고 이의 확산에 공동 매진하는 동맹, 그리고 인권, 환경 등 인류의 공익에 기여하는 역동적 동맹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 단순히 친미·반미 논쟁을 넘어서서 ‘용미(用美)의 지혜’를 강구하자. 우리가 지난 70년 가까이 미국이라는 패권국가의 틀 속에 편입하여 세계 사람들이 경탄하는 근대화(산업화+민주화)의 기적을 이루었듯이, 이제는 이를 뛰어넘어 G-7 국가를 목표로 한층 분발할 때이다.

※ 참고문헌

104) 그 외에도, 중국은 소련의 무기지원을 받아 군 현대화 도모, 외부와의 전쟁을 계기로 반대세력을 평정하려는 국내정치적 고려, 그리고 김일성이 만주까지 쫓겨 와서 ‘망명정부’를 세울 가능성 사전예방 등의 이유로 개입을 단행했다. 한편, 중국의 군대인 ‘인민해방군’은 국가의 군대가 아니라 ‘중국공산당’이라는 ‘당의 군대’이기 때문에 ‘중국공산당 군’의 줄임말인 ‘중공군’이 걸맞는 호칭이다.

105) 이 내용은 필자가 한국군사문제연구원의 월간지 「월간 KIMA」 2019년 11월호에 기고한 평론문 “중국은 미국을 능가하는 패권국이 될 수 있을까?”의 한 부분을 수정 보완한 것임.

106) 최근 미국의 블룸버그인텔리전스(블룸버그의 경제분석 부문)는 2020년대 10년간(2020-2029) 중국경제 성장은 연평균 5% 정도, 2030년대에는 4.2%, 2040년대에는 3.3%로 낮아질 것이며, 2050년에는 2.9% 수준이 되리라 예측했다. https://news.joins.com/article/print/23862647(2020-09-02).

107) 오바마 전 미국대통령 역시 최근(2020.11.17.) 출판된 그의 회고록 「약속의 땅(A Promised Land)」에서, 중국이 미국을 따라 오려면 몇십년 걸릴 것(decades away)이고, 그것도 분명히 미국의 ‘전략적 실수’가 수반되어야 가능할 것이라고 예측했다.